등록 : 2005.12.07 18:17
수정 : 2005.12.08 16:48
서은영의트렌드와놀기
한 패션 잡지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보게 됐다. 그레타 가르보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쓴 기사로, 그의 패션을 다룬 것이었다. 사실 난 그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어린 시절부터 그레타 가르보의 가늘고 둥근 눈썹에 매료돼, 화장을 할 수 있게 된 나이가 되어서는 독특한 그 눈썹을 시도해보기까지 했다. 갈매기처럼 날아갈 것 같은 그의 눈썹 아래 지긋이 뜬 눈매까지도 멋있게 보였다. 모든 것을 초월한 것 같은 도도하면서도 고혹적인 그 눈빛에 매료되어 몇 번 따라해봤는데 언제나 듣는 소리는 “졸고 있니?” 였다.
어쨌거나 그레타 가르보의 독특한 화장법, 태도와 함께 그의 패션은 필자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디자이너 그리고 사진가 등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교과서’ 같은 존재다. 영화 <그랜드 호텔>, <마타하리> 등에서 보여주었던 패션은 그의 카리스마를 완벽하게 완성시켜주며 그를 영원한 패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는 재킷이나 블라우스, 엉덩이가 터질 것 같이 딱 맞는 긴 치마를 입은 그레타 가르보의 패션 감각은 당시 배우들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는 남자들이나 입을 턱시도나 바지 정장을 너무나도 멋지게, 그리고 섹시하게 입었다. ‘섹시하다’는 개념은 단지 야하게 혹은 화려하다는 것이 아니다. 중성적인 모습에서도 그는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며 그만의 ‘섹시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전쟁 이후에 여성들을 코르셋과 치렁치렁한 치마로부터 해방을 시켜준 코코 샤넬과 그레타 가르보는 무기만 들지 않았을 뿐 패션에 혁명을 일으킨 20세기의 잔다르크였던 것이다.
그는 은퇴 뒤 모습이 일절 드러나지 않도록 꺼려하며 베일 속에 숨어버린 채 영원히 신비스러운 아이콘으로 남았다. 그뒤 많은 사람들이 그리움을 담아 그의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장 폴 고티에, 소니아 리키엘, 존 갈리아노 같은 패션 디자이너들은 그레타 가르보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옷을 만들고, 모델들을 비슷하게 꾸며 패션쇼에 세우기도 한다. 또 사진가들은 그의 신비스럽고, 우아한 모습에서 이미지를 따와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브 생 로랑의 중성적인 수트를 입은 여성의 모습을 파리의 한 골목에서 밤에 찍은 헬무트 뉴튼의 사진 또한 마찬가지다. 전설이 되어버린 이 한 장의 사진에서도 그레타 가르보의 모습이 겹쳐진다.
개성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그저 예쁘게만 보이려는 스타들과 가르보는 판이하게 다르다. 얼마 전 새로운 음반을 내며 <엠티브이>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마돈나도 가르보와 마찬가지다. 그는 이제 패션 디자이너에게조차도 영감을 주는 완벽한 아이콘이 됐다. 마돈나가 만들어내는 모습들은 그의 노래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하는 것이다. 결국 트렌드는 사라져도 패션은 남는다는 샤넬의 말처럼 그레타 가르보나 마돈나 같은 명석한 여성들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원함을 얻은 것이 아닐까.
서은영/스타일리스트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