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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이안의 동시사용설명서】
짜장 요일방주현 오늘 급식은 짜장면이다! 호로록, 한 입 먹으면
콧잔등에
맛있는 짜장 점 일곱 개 호로록 호로록, 두 입 먹으면
입가에
맛있는 짜장 수염 두 가닥 마주앉은 친구가
웃는 소리도
짜장짜장 하는 날 ―〈동시마중〉(2017년 5·6월호) 짜장면이 표준어로 된 것은 2011년부터다. 그전에는 ‘자장면’으로 쓰고 ‘짜장면’으로 읽었다. 자장면이란 말에서는 도무지 짜장면 특유의 맛이 나지 않아서다.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듯이 ‘짜장’은 ‘과연 정말로’라는 뜻을 지닌 부사이기도 하다. 짜장면은 길거리 아무데서나 코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짜장 힘이 센 음식인 것이다. 방주현의 ‘짜장 요일’은 명랑하고 발랄하고 사랑스럽다. 시를 여는 “오늘 급식은 짜장면이다!”라는 반가운 외침은, 짜장면이어서 낼 수 있는 효과다. “호로록,” “호로록 호로록,” 소리는 국수로도 낼 수 있지만 콧잔등이나 입가에 맛있는 점을 찍거나 수염 가닥을 그리는 건 짜장면이 아니면 할 수 없다. 혼자 먹지 않고 “마주앉은 친구”와 함께, “짜장짜장” 떠들고 웃으며 먹기에 이 짜장면은 특별한 요일의 특별한 음식, ‘짜장 요일’의 주인공이 된다. 같은 식구라도 서로 말이 통하고 뜻이 맞지 않으면 화목하기 어렵다. 음식도 그렇다. 식구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면 그것만큼 난처한 일도 드물다. 우리 집 음식 달력을 만들어 보자. 할아버지 생일, 엄마 생일, 아이 생일,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첫눈 오는 날, 방학식 날, 오랜 가뭄 끝에 비 오는 날…어떤 음식 앞에 둘러앉으면 더 특별한 날이 될까. 더 다정한 사이가 될까. 엄마는 닭볶음과 김치찌개, 아빠는 북엇국과 된장찌개, 맏이는 오징어삼겹살불고기, 둘째는 달걀말이, 식구마다 만들고 싶은 음식을 한두 가지씩 익혀 두었다가 특별한 날 차려 내도 좋겠다. 음식을 만들 때는 더디고 성가시더라도 아이를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같이 하는 게 좋다. 눈썰미가 좋아지고 손이 야물어진다. 조심스러움과 때의 감각을 익히게 된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의 수고로움을 이해하고 음식 앞에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음식 만들기는 시 쓰기와 비슷하다. 재료 준비에서 간 맞추기, 상차림까지, 정성과 안목, 절제와 균형, 종합적인 예술 감각이 필요하다. 이처럼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이 한꺼번에 사용되는 일은 흔치 않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잘못 쓴 시는 버리면 그만이지만 음식이 잘못되었다고 후딱 내다 버릴 순 없다. 맛이 덜해도 표나지 않게 먹어 주는 게 음식에 대한 예의다. 의식주는 식주의로 바꿔야 순서가 맞다. 먹는 일과 사는 일이 직결되었기에 ‘먹고’와 ‘살다’란 말이 ‘먹고살다’로 딱 붙었는지도 모른다. 음식이 시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 역시 이와 관계될 터이다. 시에 자주 등장하는 정도를 따져 보아도 음식-집-옷 순이다. 국수를 생각하면 백석의 〈국수〉나 이상국의 〈국수가 먹고 싶다〉가 떠오르고, 간장게장 앞에선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이 떠오른다. 동시로는 류선열의 〈국수 꼬리〉, 이상교의 〈아름다운 국수〉, 권오삼의 〈라면 맛있게 먹는 법〉, 유희윤의 〈잡채는 말도 예쁘게 해〉, 안도현의 〈밀가루 반죽〉, 장영복의 〈엄마도 모르는 엄마 얼굴〉, 유강희의 〈국수 가족〉, 〈새벽 편의점〉(컵라면), 정유경의 〈갈치〉, 송선미의 〈사과 아삭〉, 김개미의 〈커다란 빵 생각〉, 송진권의 〈트라이앵글〉(국수), 박해정의 〈뱀〉(떡볶이), 김성민의 〈장아찌〉, 신민규의 〈콜라〉, 강정규의 〈간장종지〉, 강기원의 〈김을 재우다〉, 곽해룡의 〈삼각 김밥〉 등이 떠오른다.
밀가루 반죽
안도현 칼국수 만든다고
엄마가 밀가루 반죽을 주물러요
―나도 좀 만져 봤으면
저리 물러가 앉으라고
엄마는 손사래를 쳐요
―주먹만큼만 떼어 줬으면
손에 묻히면 안 된다고
엄마는 고개를 저어요
―탁구공만큼만 떼어 줬으면
축구공만 한 반죽을
엄마는 혼자서만 굴려요
―나는 하느님처럼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데
엄마는 밀가루 반죽으로
칼국수밖에 못 만들어요 ―〈냠냠〉(비룡소 2010)
안도현 칼국수 만든다고
엄마가 밀가루 반죽을 주물러요
―나도 좀 만져 봤으면
저리 물러가 앉으라고
엄마는 손사래를 쳐요
―주먹만큼만 떼어 줬으면
손에 묻히면 안 된다고
엄마는 고개를 저어요
―탁구공만큼만 떼어 줬으면
축구공만 한 반죽을
엄마는 혼자서만 굴려요
―나는 하느님처럼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데
엄마는 밀가루 반죽으로
칼국수밖에 못 만들어요 ―〈냠냠〉(비룡소 2010)
빗줄기로 국수 만드는 법
안도현 좍좍 퍼붓는 굵은 장대비로는 칼국수를 만들자 가랑가랑 내리는 가는 가랑비로는 소면을 만들자 오고 또 오는 질긴 장맛비로는 쫄면을 만들자 ―〈냠냠〉(비룡소 2010)
안도현 좍좍 퍼붓는 굵은 장대비로는 칼국수를 만들자 가랑가랑 내리는 가는 가랑비로는 소면을 만들자 오고 또 오는 질긴 장맛비로는 쫄면을 만들자 ―〈냠냠〉(비룡소 2010)
엄마도 모르는 엄마 얼굴
장영복 엄마가 굴을 사 왔네
콩나물굴밥을 할까
생굴을 상에 올릴까
반반 나눌까, 고민하겠네
아빠는 익힌 굴을 좋아하고
누나는 생굴을 좋아하고
아빠는 콩나물굴밥을 좋아하고
누나는 생굴만 좋아하고 나는 엄마가 고민하는 모습을 좋아하지
장보기 겁난다고 빈손으로 와선
김치랑 장아찌만 상에 올릴 때
그 얼굴이랑 너무 다른 나는 싱싱한 생굴도 좋고
고들고들 익힌 굴도 좋아하지만
더 좋은 건
반찬 만드는 엄마 얼굴
밥상 그득 반찬 올리는 얼굴
직장에서 늦는 아빠가 모르는
학원에서 늦는 누나도 모르는
반찬 만드는 엄마도 모르는
엄마 얼굴 ―〈아동문학평론〉(2016년 겨울호)
장영복 엄마가 굴을 사 왔네
콩나물굴밥을 할까
생굴을 상에 올릴까
반반 나눌까, 고민하겠네
아빠는 익힌 굴을 좋아하고
누나는 생굴을 좋아하고
아빠는 콩나물굴밥을 좋아하고
누나는 생굴만 좋아하고 나는 엄마가 고민하는 모습을 좋아하지
장보기 겁난다고 빈손으로 와선
김치랑 장아찌만 상에 올릴 때
그 얼굴이랑 너무 다른 나는 싱싱한 생굴도 좋고
고들고들 익힌 굴도 좋아하지만
더 좋은 건
반찬 만드는 엄마 얼굴
밥상 그득 반찬 올리는 얼굴
직장에서 늦는 아빠가 모르는
학원에서 늦는 누나도 모르는
반찬 만드는 엄마도 모르는
엄마 얼굴 ―〈아동문학평론〉(2016년 겨울호)
삼각 김밥
곽해룡 얇은 비닐 벗겨 내면 뚝딱
밥 한 그릇 되는 삼각 김밥
볶은 김치 다진 양파 참치 마요네즈
적당히 버무려진 삼각 김밥
이미 식어서 후 불지 않아도 되고
밥상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삼각 김밥
젓가락 없이도 먹을 수 있고
국물 없이도 삼킬 수 있는 삼각 김밥 뛰어가면서도 먹을 수 있는 삼각 김밥
내가 학원을 하나 더 다닐 수 있도록
시간을 아껴 주는 삼각 김밥
엄마가 마음 놓고 밤늦게까지
내 학원비를 벌 수 있게 해 주는 삼각 김밥 불 꺼진 집을 떠올리다가 울컥
목이 메기도 하는 삼각, 고두밥 ―〈전봇대는 혼자다〉(장철문 외, 사계절 2015)
곽해룡 얇은 비닐 벗겨 내면 뚝딱
밥 한 그릇 되는 삼각 김밥
볶은 김치 다진 양파 참치 마요네즈
적당히 버무려진 삼각 김밥
이미 식어서 후 불지 않아도 되고
밥상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삼각 김밥
젓가락 없이도 먹을 수 있고
국물 없이도 삼킬 수 있는 삼각 김밥 뛰어가면서도 먹을 수 있는 삼각 김밥
내가 학원을 하나 더 다닐 수 있도록
시간을 아껴 주는 삼각 김밥
엄마가 마음 놓고 밤늦게까지
내 학원비를 벌 수 있게 해 주는 삼각 김밥 불 꺼진 집을 떠올리다가 울컥
목이 메기도 하는 삼각, 고두밥 ―〈전봇대는 혼자다〉(장철문 외, 사계절 2015)
새벽 편의점
유강희 컵라면 뚜껑 위에
두 손 얹고 잠시,
눈 감은 막일꾼 ―〈손바닥 동시〉(창비 2018)
유강희 컵라면 뚜껑 위에
두 손 얹고 잠시,
눈 감은 막일꾼 ―〈손바닥 동시〉(창비 2018)
주전자
방주현 바다에 나가
고기를 한가득 싣고 올
꿈을 꾸던 쇠는,
주전자가 되어
보리차를 끓일 때마다
항구에 돌아오는
배가 된다 내가― 왔다― 뿌― 뿌―
뿌― 뿌― ―〈동시마중〉(2016년 7·8월호)
방주현 바다에 나가
고기를 한가득 싣고 올
꿈을 꾸던 쇠는,
주전자가 되어
보리차를 끓일 때마다
항구에 돌아오는
배가 된다 내가― 왔다― 뿌― 뿌―
뿌― 뿌― ―〈동시마중〉(2016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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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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