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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서울예대학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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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대학별곡
“결말이 너무 안이하잖아.” “좀 더 세밀한 묘사가 필요해.” “이 부분, 잘라!” 치열함이 오간다. 이젠 더 늦출 수도 없다. 신춘문예 등단에 사활을 건 대학 문예생들의 막판 벼락치기 현장이다. 대개 신춘문예 마감이 12월 초라 응모자들이 작품을 다듬는 후반 작업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원광대 이안빈(문예창작 3년)씨는 “요즘 부쩍 수업을 빠지는 친구들이 늘었다”고 전한다. 매번 되풀이 되는 신춘문예 시즌의 풍경이다. 이씨는 “세 명 정도 모여 방 하나를 구해 합숙하며 서로 깨워주고 작품도 봐준다”고 전하는데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고려대 박미정(문예창작 4년)씨는 “시를 전지에 크게 써놓고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며 시를 검토한다. 하루아침에 작품 하나가 ‘순풍’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 스퍼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투고할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는 6개월에서 1년, 그 이상의 준비기간이 걸린다. 서울예대 김려령(문예창작 2년)씨는 “올해 2학기 희곡창작실습은 신춘문예 투고 작품을 쓰는 것이 수업의 목표였다”며 “여름에 써놓았던 희곡을 교수에게 보여주고 15번의 퇴고를 거쳤다”고 설명한다. 다들 살도 빠지고 머리까지 빠진다. 준비 방법은 다양하다. 원광대 전승훈(문예창작 3년)씨는 “문학회 모임에서 대학원 선배들과 유대하여 조언을 많이 얻는다.” 나홀로 준비생도 많다. 고려대 박씨는 “개인 작업이라서 보여주는 분위기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혼자 조용히 쓰고 낙방하면 혼자 속상해 할 것”이라고 전한다. 이들에게 모임은 없지만 교수님은 있다. 원광대 이씨는 “혼자 준비하는 친구들은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찾아가 품평을 거친다”고 설명한다. 신춘문예가 기본기를 보는 탓에 소위 ‘신춘문예 스타일’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스타일을 잘 읽어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고려대 박씨는 “교수님은 나의 서정적 스타일을 보시고 파격적인 작품을 선발하는 ㅇㅇ 신문사는 피하라고 하셨다”고 말한다. 습작생들은 시대적 경향과 신문사별 특성에 맞춰 자신의 작품을 수정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 그래서 연세대 이현주(국어국문 3년)씨와 같이 결심하기도 한다. “내 시는 신춘문예에 맞지 않아 투고할 생각이 없다.” 그래도 원광대 이씨는 신춘문예와 그 준비과정을 옹호한다. “신춘문예는 등용문 아닌가. 이를테면 면허증을 따는 과정일 뿐이다. 아무리 레이서가 될 만한 실력을 갖췄더라도 면허시험장 안에서는 기본적 실력을 보이는 게 우선 아닌가. 레이서처럼 자유로이 질주하는 건 그 뒤에 도로에서 해도 된다.” 전범을 충실히 따르느냐 개성의 표현에 열중하느냐 이것이 문제다. 이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해묵은 논쟁이면서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라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문학적인 고민도 있지만 당선을 위해 여러 유리한 방법을 모색하는 일에 초연할 수 없는 것이 습작생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자신의 작품을 투척하러 문학도들은 우체국으로 향한다. 마감일자 우체국 소인이 봉투에 찍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김지수 〈서울예대학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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