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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9 22:13 수정 : 2005.12.09 22:13

월급생활 끝내는 김명곤 국립극장장

관료·권위적인 운영 ‘거꾸로 거꾸로’ 장충동 문화벨트 마무리 못해 아쉬움

김명곤(53) 국립극장장이 이달 말 퇴임한다. 2000년 1월 첫 공채 극장장으로 취임한 지 꼬박 6년만이다.

반정부적 연극운동가에서 정부 산하 기관장으로의 변신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납골당’으로 불리던 극장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났고, 유료 관객 점유율과 재정 자립도는 그가 취임하기 전에 견줘 두 배 가량 높아졌다.

“예전에는 극장운영이 관료적, 폐쇄적, 권위적이었어요. 일단 그 반대로만 해 보자고 생각했죠. 관료주의에서 탈피하고, 개방적인 조직으로 바꾸고, 민간 전문경영 기법을 도입했어요. 국민 속의 국립극장, 정보화 속의 국립극장, 세계 속의 국립극장이 처음 취임할 때 목표였어요.”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의 브리핑처럼 자연스럽게 설명을 이어간다. “국민들이 극장을 사랑하게 만들자”는 뜻에서 권위적이던 극장 이름을 해오름극장, 달오름극장 등으로 바꾸고, 각종 페스티벌과 어린이·청소년 문화탐방 등 계층별 문화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 왔을 때는 컴퓨터 할 줄 아는 사람이 2명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실력이 달릴 정도로 향상됐어요. 공연 자료를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인터넷 홍보를 시작했죠.”

세계 속의 국립극장을 만들려고 인터넷을 뒤져 전 세계 극장이나 문화단체 주소를 긁어모았다. 동포 위문공연을 비롯해 “정부가 가라면 가는” 수동적 해외 공연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소화를 못할 정도로 해외 교류 업무가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소리’를 얻으려고 딸의 눈을 멀게 했던 영화 <서편제>의 소리꾼 ‘유봉’(김명곤 분)처럼, 지난 6년 동안 그는 그야말로 독하게 일했다. 취임할 때 데려왔던 측근 2명이 과로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그만 두고 나갈 정도였다.

덕분에 그의 경영성적은 해마다 ‘A’였고, 3년 임기를 마치고 연임까지 하게 됐다. 처음 5천여만원으로 시작했던 연봉은 2005년에는 처음으로 1억원이 넘어 대통령, 국무총리에 이어 세번째로 연봉을 많이 받는 공무원이 됐다.


“사람들은 제가 큰 부자가 된 줄 아는데, 그래봤자 월급쟁이더라구요. 그만큼 지출도 많아졌고. 이제 다시 곧 연봉 ‘제로’가 되는데, 뭘. 불규칙한 수입에 다시 익숙해져야지. 사실 나는 20년이상 월급 없이 살았거든요.”

처음엔 출퇴근하는 것도 힘들고, 넥타이 매고 의례적 행사에 참석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국립극장이라는 연극에서 극장장이라는 역을 맡았다고 생각하고 충실히 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자유분방한 예술가 기질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그걸 다시 회복하는 게 과제죠.”

아쉬움이 남는 것은 ‘국립극장 장기 발전 계획’이다. 남산 자유센터를 매입해 장르별 전용극장을 만드는 등 서울 장충동 일대를 문화벨트로 만드는 방안을 2002년부터 계획했는데, 별 진전이 없었다. 그나마 올 들어 국회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어 위안으로 삼고 있다.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한 뮤지컬 <우루왕>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할 때가 극장장을 하는 동안 가장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포부 역시 예술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연출도 하고 싶고, 배우도 하고 싶고, 영화감독도 하고 싶어요. 창작 뮤지컬과 영화로 동시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을 구상중이에요. 한말 고종 때 궁중 무희와 프랑스 외교관과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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