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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4 22:23 수정 : 2005.12.15 14:31

미쓰코시의 후신인 신세계 백화점 본관(왼쪽). 건물 뒷쪽에 지난 8월 개장한 14층짜리 대형 신관이 압도하듯 서있다. 오른쪽 사진은 리모델링 공사 중인 현재 본관의 모습. 마그리트의 그림이 확대돼 있는 차양막을 둘렀다.

옥상정원·서구식 신상품들 경성시민들 혼 쏙 빼놓다

“…상업을 하더라도 가령 미스코시 같은 데를 가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상품을 여러가지로 또 많이 사다 놓고 팝니다. 그러니 상품 한 두가지나 조금씩 내놓고 파는 상점보다 손님이 많이 옵니다. 또 파는 물건 뿐 아니라 설비에도 많은 돈을 들였습니다…”

31년 4월 발간된 잡지 <혜성>에서 경제평론가 서춘은 ‘조선사람 빈궁의 실지적 7대 원인’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전해 새로 개장한 미쓰코시 백화점이 일으킨 유통 혁명을 이렇게 묘사했다. 전례 없이 큰 대형 매장, 정찰제 판매와 공격적인 물량 공세, 대매출· 박리다매 전략을 쓰는 거대 백화점의 등장 앞에 서춘은 경악하면서 조선인 상가의 재래식 유통 체제를 통박하고 있다. 1906년 이미 조선에 지점을 개설했던 미쓰코시의 놀라운 대변신은 여러 일상 용품들을 점두에 놓고 단순 판매하는 잡화점 수준이던 당시 조선 상점가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미쓰코시란 이름은 우리 근대 유통사뿐 아니라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시각문화와 근대 인식을 뒤바꾼 전환기적인 상징어로 역사에 남게 된다.

오늘날 신세계 백화점으로 바뀐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지점은 1930년 10월24일 오전 9시 경성의 최고 번화가인 혼마치 1정목(오늘날 충무로 1가)의 옛 경성부청 터에 화려하게 개장했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절충식 르네상스 타일 건물인 미쓰코시 경성점은 일본 건축가 하야시의 역작으로 부채꼴로 펼쳐진 입면에 현관 부분은 전라도산 화강석을 장식조각해 모던한 멋을 부렸다. 건물터 자체가 1895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 영사관과 합방 뒤 경성부청이 있던 곳인 만큼 이곳은 명실 상부한 진고개 일본인 상권의 핵심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당시 경성 남촌의 대표적 건물인 조선은행, 경성우편국과 남대문통 대로를 두고 삼각형 랜드마크를 형성한 이 백화점은 무엇보다 휘황차란한 서구식 신상품들을 늘어놓은 들머리 쇼윈도우와 엘리베이터, 그리고 경성의 최고 명물로 손꼽힌 옥상정원으로 유명했다. 근대 도시 소비문화의 마약같은 매력을 처음 맛보게 된 경성 시민들 사이에서는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살 것이 없어도, 백화점 내외부와 혼마치 일대를 얼빠진 듯 방황하는 이른바 ‘혼부라당’(혼마치를 어슬렁거리는 무리란 뜻의 일본 속어)의 근대 풍습까지 생겨났다. 채만식의 풍자소설 <태평천하>를 보면 속물적인 만석꾼 부자 윤직원 영감은 그의 애첩 열다섯살 기녀 춘심이와 미쓰코시 근처 혼마치의 진고개 번화가를 갔다오다가 이런 수작을 나누고 있다.

“저어 참, 영감님?” “왜야?” “우리 저기 미쓰꼬시 가서, 난찌(런치) 먹구 가요?” “난찌? 난찌란 건 또 무어다냐.”

“난찌라구, 서양 즘심(점심) 말이에요.” “서양 즘심?” ”내애, 퍽 맛이 있어요!” “아서라! 그놈의 서양밥, 말두 내지 마라!"

“왜요?” “내가 그년의 것이 좋다구 히여서, 그놈의 디 무어라더냐 허넌 디를 가서, 한번 사먹다가 돈만 내버리구 죽을 뻔히였다!” “하하하, 어떡허다가?” “아, 그놈의 것 꼭 소시랑을 피여 논 것치름 생긴 것을 주먼서 밥을 먹으라넌구나! 허 참…….”

피싯 비웃음 나오는 이들의 대화는 경성에서 얼치기로 근대를 익혀갔던 당대 군상들의 단면을 극명하게 증언한다. 돈 없는 이는 눈요기하는 혼부라당이 되어 겉멋에 빠지고, 돈 있는 자들은 천민적 구매행각을 통해 소비문화에 빠져갔다. 지방과 서울 변두리에서는 굶어죽는 자와 동사자가 속출했던 시절 비참한 서민 생활과 대비되는 미쓰코시의 소비문화는 지식인들에게 생산을 외면한 식민지 소비문화의 모순을 고민하게 했다. 일본 신사와 양식 벤치, 카페, 금붕어 어항, 식물원이 있던 옥상 정원은 유용한 성찰의 공간이 된다. 눈 앞에 펼쳐진 경성 도심의 근대 경관 이면에 숨은 소비 문화의 발톱을 그들은 떠올리곤 했을 것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의 소설 <날개> 종반부 주인공의 독백은 유명하다.


“나는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근대 소비문화의 터전을 심었던 이 명소는 지금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문화재청의 근대문화유산 등록 대장에는 빠져있다. 문화재청쪽은 “2002년 등록을 제일 먼저 추진했으나 소유주쪽이 극력 반대해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건물은 집들 위로 둥둥 떠다니는 신사들을 그린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골콘다>를 확대한 그림막에 가리워져 있다.

글·사진/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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