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2 17:50
수정 : 2006.01.12 17:50
차별과 소외없는 그날까지…
‘경축 추계체육대회’라 큼지막하게 써붙인 출정문이 안쓰럽다. 그 아래 선생님 앞에 줄지어 출정을 기다리는 조무래기들은 기껏 여남은 명이나 될까. 흰 구름 몇 점 뜬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드높은 만국기, 인적 드문 널따란 운동장엔 아이들 그림자만 짙다. 사진작가 이갑철이 이렇게 찍어낸 ‘촌아 울지마’에 소설가 공선옥은 이런 글을 붙였다. “…노동의 대가는 돌아오지 않고 촌사람들이 가꾼 것들은 갈수록 제값을 받지 못해서 촌은 운다. 촌은 그렇게 울면서 비어간다. 우리나라 모든 촌들은. 촌이 우는 한, 촌이 비어 있는 한, 우리 모두는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다! 자가용을 타고 경치 좋은 시골길을 아무리 신나게 달려간다 하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10명의 사진가와 4명의 문학작가들이 참여해 만든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현실문화연구 펴냄)에는 이처럼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들과 어린이들만 남은 농촌을 포함해 모두 10가지의 ‘차별과 소외’를 담았다. 한국인과 결혼해 가족을 이룬 아시아의 여성들과 그 2세들, 또 다른 유민들인 중국동포들, 박해를 피해 조국을 떠난 국제난민들, 한번 들어가면 쉬 나올 수 없는 보호시설의 정신장애인들, 가족에 기대어 힘겹게 살아온 신체장애인들,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다양한 유형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어촌·산간벽지에서 모질게 삶을 이어온 여성들, 부모 품 떠나 먼 시골 할아버지·할머니와 사는 조손가족 어린이들. 시원한 크기의 국배판 240쪽에 컬러, 흑백 사진 수백장을 담았다. 2003년에 같은 주제로 9명의 사진가들이 낸 <눈·밖에·나다>에 이은 두번째 인권사진 프로젝트다.
사진가로 이갑철 외에 성나훈, 임종진, 김문호, 박여선, 김종만, 이규철, 최항영, 노익상, 한금선이, 문인으로는 소설가 공선옥, 방현석과 시인 이문재, 조병준이 참여했다. 지난해 봄부터 초겨울까지 도시의 뒷골목과 노동 및 집회현장, 농촌, 어촌, 산간벽지, 격리시설 할 것 없이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떠돈 이들은 다큐멘터리, 포토 에세이, 포트레이트 등 제각기 원하는 방식대로 차별과 소외에서 비롯되는 우리 사회의 아픔을 기록했다.
인권위는 사진 외에도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디자인 등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들을 통해 차별과 소외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식을 일깨우고 공감을 얻어내기 위한 작업을 몇년째 계속해왔다. 이번 사진 프로젝트 편집기획 책임자인 다큐멘터리 작가 안해룡씨는 “인권위는 주제 선정과 취지 정도를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책 내용과 형식에 관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민간 참여자에게 맡겼다”며 전시회도 따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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