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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24 17:52 수정 : 2006.01.24 17:55

박노자

여전히 일그러진 ‘우리들의 대한민국’

읽을 때마다 새삼 탄복하게 만드는 국어(한글) 구사력, 시사뉴스든 소설이든 공식통계든 역사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최신 소식까지 두루 막힌 데 없이 섭렵하면서도 정연하게 하나로 꿰뚫어내는 놀라운 뇌용량의 소유자. 러시아 출신 귀화 한국인 박노자.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인 그가 또 한권의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 02>(한겨레출판 펴냄)를 냈다.

부끄러운 속살 꿰뚫어

2001년 12월에 낸 <당신들의 대한민국 01>의 후속편인 셈이다. 앞 책이 나온 이후 최근까지 매체들에 기고한 글을 묶고 이번 책을 위해 새로 쓰거나 손질한 서문과 ‘박제가 된 학문의 자유’ 등으로 보완했다.

‘차별과 폭력을 넘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향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서문 앞에는 다산 정약용의 ‘여름 술을 대하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한밤중에 책상을 차고 일어나/ 탄식하며 높은 하늘을 본다네./ 많고 많은 머리 검은 평민들/ 똑같이 나라 백성들인데/ 무엇인가 거두어야 할 때면/ 부자들을 상대로 해야 옳지/ 어찌하여 가혹하게 긁어가는 일을/ 유독 힘 약한 무리에게만 하는가.”

그리고 서문에 실린 다음과 같은 구절.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화려한 영화를 재미있게 봐도 과연 그 전투 장면을 어렵게 연출해낸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일당으로 얼마를 받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떨쳐낼 수 없다.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그 상품을 만든 이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않았다면 ‘노예 노동의 결실을 즐기고 있다’는 가책을 어떻게 면할 수 있겠는가?”

박노자는 1990년대 이후 다양성이 증대하고 ‘바깥’과의 벽이 급속히 허물어져 가면서 사회의 기본적인 문화적 코드들이 바뀌는, ‘과거와의 결별’이 시작된 대한민국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민족사관고등학교가 ‘우리민족이여, 미국의 우수대학을 정복하자!’는 구호 아래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영자(英字)의 전성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물질적으로 날로 윤택해지는 ‘준주변부 종속국가’ 대한민국의 생활은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진단한다. 군대와 학교, 노동현장,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마주치는 시간강사와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저학력자, 병사 등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주변부 종속국가에 대한 중심국의 시각, 종속국가내 비주류에 대한 주류의 태도와 겹친다.


영어 범람 ‘영자의 전성시대’

유행하는 성형조차도 ‘표준’ ‘주류’에 몸을 맞추려는 ‘체제에 순치된 욕망’으로 읽는 그는 한국 지배계급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일상의 권위주의에 매몰되는 자신들의 피지배자, 즉 ‘이념적 타자’를 때려잡는 법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는 섬?한 결론을 내린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모든 것을 빼앗긴 자들의 인내가 한계점에 도달할 때쯤, 결코 무뎌지지 않는 한국 지배자들의 ‘전가의 보도’ 국보법은 그 효력을 만천하에 보일지도 모른다.”

‘한류’가 세계로 뻗어가는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신자유주의하의 폭증하는 소비욕구를 대리만족시켜준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화려함의 이면, 빈익빈 부익부와 악화 일변도의 고용불안, 약자에 대한 살인적 착취, 배제 등 “그 내용에 정치·사상적으로 불온한 요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갈파한다.

성형은 체제의 순치된 욕망

그는 ‘유일 주체사상’과 다를 바 없는 배타성을 보이는 일부 기독교와 썩은 구조에 맞서기보다 선의 세계로 도피해버린 불교 등에 분노하고 절망하면서도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20세기>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본다. “굶주림과 구타 속에서 생존과 인권을 위해 파업하는 얼굴 모를 여공의 아이를 인종·종족·종교적 배경과 무관하게 같은 노동자로 같은 인간으로서 봐주겠다고 나서는 정신” “서로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연대의식”이 그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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