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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1 17:27 수정 : 2006.02.02 17:50

김승연 〈고대신문〉기자

2005대학별곡

‘민족 대이동’의 기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대학가도 꽤 한적할 법한데, 어째 방학치고는 분위기가 영 수상쩍다. 계절학기가 끝난 지도 오랜데 도서관 열람실은 시험 때처럼 달궈져있다. 방학 중 각종 외국어·한문 등의 단기 강좌가 열리는 강의실은 입시 학원을 연상케 할 만큼 비좁다. 자취방과 하숙집을 버젓이 전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집에 내려가지 않았다”는 대학생 김아무개(23)씨. 바짝 다가온 사법 시험을 준비하느라 명절을 잊었다. “왔다갔다 하면 (공부) 흐름도 끊기고 공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란다. 지방에 연고를 둔 많은 대학생들이 자격 시험이나 취업 때문에 방학에도 학교 주변에 머물고자 한다.

‘할 일이 있는데 어떻게’, ‘벌려 놓은 일이 좀 있어서’ 내지는 좀 더 과감하게 ‘(집이)너무 멀어서’라는 것이 흔한 이유다. 하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다. 전남 광주가 집인 김성훈(고려대 철학 4년)씨는 “명절 때 집안 어른들이 취직에 대해 너무 자세히 물어 보시는 게 부담이 돼 집에 내려가는 것을 피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하숙생활 5년차인 박범기(고려대 사회 4년)씨의 고향은 경남 경주. 하지만 집에 가는 빈도가 점점 준다. 그 역시 졸업 갈림길에 서 있어서다.

어릴 때부터 가족 모임에서 으레 들었던 ‘네가 올해 몇 학년이지?’가 ‘너 이제 몇 학기 남았니?’로 바뀌는 순간 긴장감 대략 200% 증가. 그 때 친척 한 분의 이어지는 말씀. ‘내가 아는 누구는 어디 들어갔다던데, 넌 어떻게 돼 가니’라 물어 행여 ‘대학원 준비한다’ 하면 ‘취직을 해야지’ 하시고, 취업 준비한다 하면 ‘요즘은 공무원 시험이 최고라더라.’ 아, 이 목을 옥죄는 영원불멸의 레퍼토리들.

집에 몸만 가는 경우도 많다. 이주성(성균관대 행정 4년)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충남 홍성에 있는 집에 다녀왔지만 마음은 영 싱숭생숭하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이씨는 “어른들이 주로 ‘안 붙으면 뭐 할거냐’는 질문을 많이 하신다”며 “걱정해서 하시는 말씀인 건 알지만 솔직히 듣기 편한 소리는 아니다”라고 전한다. “나중엔 슬쩍 자리를 뜨고 싶단 생각이 든다”고 덧붙인다.

서울 인근이 집인데도 가질 않는다. 수원이 집인 손동욱(고려대 철학 4년)씨도 “당분간은 집에 갈 생각이 없다”며 “모든 게 마음의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일이 있어도 미루고 갈 수 있는데 가족들이 너무 신경을 많이 써주니까 기대가 부담이 돼 마음이 안 내킨다”고 털어놓는다. 또 “가족이 중심이 된 생활을 하다 대학에서 개별적인 삶을 살다 보니 ‘이제는 좀 내버려두시지’라는 반발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한다. 범기씨는 “요즘 가족 모임은 소문과 이야기가 공유되는 공간이란 의미가 크다”며 “서로 모여 자랑하느라 바쁜 어른들을 보면 좀 착잡하다”고 전한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명절 증후군에 삭신이 쑤실 때쯤, 졸업 앞둔 대학생도 어김없이 후유증을 앓는다. “누구누구네 자식 어디 들어갔다”고 던져진 말 한 마디, 악의가 없어도 온 가족이 모인 지붕 아래 유독 자신만 작아지고 외로워지는 것이다.

‘이 놈의 징한 공부~, 핑계대고 집에 한번 안가면 그뿐’이라고 외치는 2006년 ‘대딩’ 광대들은 오늘도 여전히 불안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김승연 <고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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