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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앞에 선 시골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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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3·1운동 직후 한국인들의 모습 그림·글 처음 발굴
“일본경찰이 죄수들을 끌고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죄수들은 흑갈색 옷에다 용수를 쓰고 짚신을 신은 채 줄줄이 엮여 끌려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6척 또는 그 이상인데, 그 앞에서 총칼을 차고 독일식 모자에 번쩍이는 제복을 입고 가는 일본인들은 한국 죄수들의 어깨에도 못 닿을 정도로 작았다. 죄수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사람은 초라해 보였다.”(153쪽)
3·1운동 직후의 한국 사정을 기록한 책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1920~1940>(책과함께 펴냄)이 처음으로 발굴돼 소개됐다. 원제는 <올드 코리아>(허치슨출판사, 1946년).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97~1956)와 그의 여동생 엘스펫 키스 로보트슨 스콧이 1919년 3월28일부터 3~6개월 동안 한국을 방문해 쓰고 그린 결과물을 엮은 것으로, 본문은 동생 엘스펫이 쓰고 그림설명은 그림을 그린 언니 엘리자베스가 썼다.
그들은 만세운동으로 수감된 이화학당 학생을 면회하고, “몇인치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문구멍으로 대화를 해야 했는데 ‘루스’라는 여학생은 슬픈 표정이라기보다는 환희에 넘치고, 승리한 자의 표정이었다”라고 적었다.(157~160쪽) 또 끌려가 고문당한 흔적이 있는 부인의 초상를 그리면서 “그의 표정은 평온하고, 원한에 찬 모습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154쪽)
그들은 “일본사람들은 자기들이 한국사람에게 물질적 혜택을 준다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신적 바탕 위에 건립되지 않는 나라는 결국 재난을 당한다”라는 청년의사를 말을 통해 한국인이 일제의 속내와 미래를 꿰뚫고 있었음을 보여준다.(188~189쪽) 또 세브란스병원의 의사 프랭크 스코필드와 하세가와 조선총독과의 인터뷰를 인용해 “일본 군인들이 신자들을 교회에 가두고 총살한 다음 불을 질렀다”는 제암리 사건의 진실을 전하고 있다.(220~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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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인 듯 보이는 ‘두 명의 한국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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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끌려가 고문당했던 여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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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가 그린 그림들은 모두 39점(컬러 16점)인데, 동대문, 부벽루 등 건물과 풍경화뿐 아니라, 인물화를 통해 한국인의 일상과 열심히 살아가는 조선사람들의 진솔함을 담아내고 있다. 대학교수와 결혼한 왕실의 공주, 운양 김윤식, 초대 주불공사를 지낸 민영찬의 딸 등 양반 외에 필동이, 섭섭이, 담뱃대 문 노인 같은 보통사람들도 많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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