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노래 대학 새내기도 좋아할 겁니다"
밸런타인데이, 하늘이 잿빛으로 꾸물거리던 날 만난 로커 김경호(35)는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모자를 눌러쓴채 인사를 건넸다. 얼굴이 창백해 보이고 다소 마른 듯해 안부부터 물었다. "활동 안하면 더 몸이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래도 많이 좋아진건데. 하긴 러닝 머신 사놓고 빨래걸이로 쓰는게 저니까요. 체력의 한계를 느껴 1년 전 담배를 끊었고 요즘 활동하려고 보약먹고 있습니다."(웃음) 그러고보니 또 달라진 모습. 7집 때 단발로 싹둑 잘랐던 머리가 어깨 밑까지 흘러내린다. 머리 기른 남자가 이리 반가울 줄이야. 1997년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을 부를 때가 떠오른다. "7집 직전 6~7개월 공백기 때 제 고집을 꺾고자 머리를 잘랐어요. 7~8년 긴머리를 고수했고 음악 스타일에 변화가 없자 '내가 그동안 너무 멋있는 척 한 건 아닌가' 생각했죠. 그런데 전 머리를 길러야 하나봐요.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더군요. 이번엔 긴머리에 굵은 웨이브를 줄 겁니다."(웃음) 역시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긴 머리로 한쪽 눈을 가린채 고음역대를 샤우팅 창법으로 소화하기. 다소 내성적이고 어두워보이지만 무대에선 180도 돌변하던 김경호가 23일 8집 '언리미티드(Unlimited)'를 낸다. 2004년 7.5집 이후 1년7개월 만으로, 7.5집은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7집 때가 팬들에게 각인된 그의 마지막 모습이리라. 단발머리로 등장한 7집은 솔직히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는 당시 오락 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며 시청자를 웃겨야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노래보다 웃기는데 신경쓰자 노래는 '옵션'이 됐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그런 활동 방식은 잘못됐던 것 같아요. 이 기억을 지우고자 공백기를 갖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쇼오락프로그램을 통한 음반 홍보가 자연스런 추세지만 8집으론 공연 무대에 많이 설 겁니다." 8집 제목은 '언리미티드'. 말 그대로 제한받지 않고, 구애받지 않고 여러 장르의 음악을 담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인더스트리얼 음악, 유로팝에 록 접목, 하드코어록 등 장르에서 해방돼 크로스오버적인 요소를 담뿍 녹였다. 이상준, 거리의 시인의 리키 등 새로운 작곡가와 손을 잡은 것도 이때문. 수록곡 중 '수호천사' '록 앤 라이트(Rock&Light)'는 경쾌하고 흥겨운 80년대 LA메탈 성향의 곡, '워리어(Warrior)'는 하드코어 록이지만 일본 드라마 주제곡을 리메이크한 '서머 캔들스(Summer Candles)', 일본그룹 튜브의 곡인 '너와 함께라면' 등 주로 메이저 발라드곡을 담았다. 타이틀곡은 마야, 김형중 등의 음반에 참여한 작곡가 표건수 씨의 세련된 록발라드곡 '사랑 그 시린 아픔으로'. "세련된 멜로디지만 소박한 느낌의 곡을 힘있고 깨끗하게 불렀다"고 평했다. 그러자 그는 "록그룹 선배들이 고음역대에서 가사 전달이 부족한게 불만이어서 데뷔 때부터 정확한 발음에 신경썼다"며 "사실 부모님이 아나운서 출신이다. 어머니는 결혼 후 그만두셨지만 아버지는 몇년 전 광주 KBS에서 정년퇴직을 하셨다. 그 피를 물려받았나보다"며 모자 아래서 눈이 웃는다. 이제 그도 1994년 데뷔 이래 12년이 됐다. 초심에서 흔들린게 있다면 뭘까. "새 음반을 내기 전의 마음가짐이에요. 첫음반을 낼 땐 음반 판매량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날 기억하고 좋아해줄까, 소극장에서라도 원없이 노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젠 회사를 신경쓰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부담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결과가 부와 명예를 뜻하는 건 아니에요. 그것들은 머리를 흔들고 소리를 지른 만큼 따라오는거니까요." 록 시장이 침체된 지금의 대중음악계에서 그가 8집을 내며 목표로 내세운건 록음악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12년된 팬클럽 '샤우트'가 있지만 그때 팬들은 지금 결혼했거나 직장인이죠. 록 시장이 풍성해지려면 팬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져야해요. 저 역시 그래서 새로운 작곡가들과 작업한 거고요. 지금 대학 새내기들도 어렵지 않게 제 노래를 접할 수 있을 겁니다. 감히 자신합니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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