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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8 18:46 수정 : 2006.03.08 18:46

박형정의TV속으로

최근 시청률 급상승을 보이며 주말극 1위로 올라선 문화방송 주말드라마 〈신돈〉을 보면 한국 드라마의 전통과 미래가 함께 보이는 것 같다. 시청률에 연연하거나 기존의 사극 형태를 답습하는 대신 자유롭고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거장(정하연 작가)의 행보와, 사극 연출은 대부분 엇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만의 감각으로 기묘한 생동감을 연출해내는 연출팀의 재능이 어우러지면서, 사극 장르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예를 들면 김용이 흥왕사의 난을 일으키고 난 뒤, 공민왕이 죽은 것으로 믿고 거짓 통곡을 하는 장면. 어둠 속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공민왕이 비석처럼 앉아 있고, 그 앞으로 뛰어들어와 한참이나 거짓 통곡을 하던 김용은 마침내 공민왕이 살아 있음을 알아차리고 죽을 만큼 놀란다. 그 장면에서 김용뿐 아니라, 시청자들이 받는 긴장감이나 충격도 만만찮다. 단순히 반란과 진압이라는 사건에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깊은 곳에 숨은 선과 악, 욕망과 추악함을, 마치 연극무대를 연상시키는 조명이 집요하게 파헤치는 느낌이다.

흥왕사의 난에서 다뤄진 노국공주의 모습도 매력적이다. 여태까지 사극에서 무예를 익힌 여자라는 것은 어떤 사조직에 소속된 전사들로서 머리만 기르고 있다뿐이지 모든 면에서 남성과 다름없는, 일종의 가짜 남성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신돈〉에서의 노국공주는 중전이다. 철저하게 여성이며 기존 사극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규방 암투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배역임에도, 그가 이 드라마에서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내실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다. 출중한 무예와 기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에 절망하던 그가, 난리를 맞아 몸에 피를 묻힌 채 칼을 휘두르며 궁을 지켜내는 모습은 기존 사극에서 여자 캐릭터들이 주던 답답함을 날려주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무엇보다도 〈신돈〉의 가치는 이런 대목에 있다. 3년 기한으로 고행에 들어간 편조(신돈)는 홍건적의 침입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감정적 고조를 계속해서 끌고올라가다가,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박차고 영웅처럼 뛰쳐나와 적과 맞서는 것이 오락적 측면에서 최고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안다.

하지만 드라마 〈신돈〉은 천연덕스럽게 그냥 제 길을 간다. 노국공주의 강제에 의해 밖으로 나온 편조는,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한 불벼락은 자신이 받겠다는 노국공주에게, “전하를 구하러 오셨습니까, 백성을 구하러 오셨습니까?”라고 선문답을 한다. 백성을 구하러 왔다고 대답하는 노국공주에게 “그렇다면 불벼락은 제가 받겠습니다”라고 답하는 신돈. 앞으로 신돈이라는 인물이 나아갈 길을 암시하며, 기묘한 슬픔과 함께 시린 감동을 주는 명장면이다. 오락적 재미 위에 그 무엇이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만든다. 거장의 행보는 이래야 한다. 시청률까지 오르고 있으니 금상첨화다.

박현정/드라마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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