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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19 18:46 수정 : 2006.06.20 23:24

곽경택·봉준호 감독 상하이영화제 심사위원 위촉

"이름만 알았던 조카가 유명한 영화감독이라니."

19일 제14차 이산가족 상봉이 실시된 금강산 온정각휴게소의 한 테이블에서는 난데없이 영화와 문학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천변풍경'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한 획을 그었던 소설가 박태원(1909-1986)씨의 장녀 설영(70)씨.

북측 이산가족으로 남측 동생들을 만난 설영씨는 첫째 여동생 소영(68)씨의 아들이 남녘에서 유명한 영화감독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설영씨의 조카는 2003년 '살인의 추억'에 이어 최신작 '괴물'로 호평을 받고 있는 봉준호(37) 감독으로 구보 박태원의 외손자가 되는 셈이다.

설영씨는 "준호라는 조카가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 애가 유명한 영화감독일 줄 몰랐다"며 "조카가 만든 영화를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소영씨는 봉 감독이 평소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외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게 아니냐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봉 감독은 초기작 '플란다스의 개' 등 3편의 영화를 제작하면서 시나리오까지 직접 써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설영씨는 "나도 북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1997년까지 평양기계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한 후 정년퇴임했다. 손이 작아서 한 옥타브 이상 칠 수 없어서 피아노를 그만두고 영어 공부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태원씨는 6.25전쟁 당시 친구였던 상허 이태준(1904-?)을 만나러 간다며 부인과 5남매를 남겨두고 북으로 갔다. 남겨진 가족은 1.4후퇴 때 서울 이남으로 피난했는데 장녀 설영씨만 외가인 서울 이화동에 남겨졌고 이후 소식이 끊겼다.

5남매가 만남을 고대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미국 시민권자인 남동생 일영(67)씨가 평양을 방문해 직접 큰누나를 만나면서부터. 이번 상봉에는 미국에 사는 일영씨를 제외한 4남매가 함께 했다.

반세기 만에 한자리에 둘러앉은 4남매는 싸리나무로 둘러쳐 있던 성북동 옛집, 활달한 성격으로 학교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던 설영씨, 남편을 그리며 홀로 살다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 등으로 울고 웃었다.

구보 박태원씨는 1958년 백내장 진단과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는 등 30여 년 간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1977년 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하는 등 북녘에서 문학혼을 불살랐다. 그는 1981년 끝내 구술 능력마저 잃어 1986년 북녘 아내 권영희씨가 소설의 최종편(3부)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hanarmdri@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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