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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6 20:17 수정 : 2006.08.16 20:17

TV 보는 남자

드라마도 스포츠뉴스도 ‘분기탱천’

어린아이를 천사로 기르겠다는 순진한 욕망을 품은 부모들은 위인전 때문에 최초의 좌절을 겪는다. 특히 우리나라 위인들의 삶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충직한 말을 칼로 베어 죽인 김유신은 읍참마속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한국적 모델로 추앙받는다. 어떤 장군은 목이 달아나 죽고 또 다른 이들은 화살에 맞아 세상을 장렬히 하직한다. 우리 영토를 침범한 무리들은 인정사정없이 응징당한다. 삼천 궁녀가 집단 자살하는 엽기적 사건도 있었다. 스릴 넘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아이들은 눈이 번뜩이지만 영웅적인 폭력도 흔히 존재한다고 설명해 내야 하는 부모들로서는 난감하다. 왜 우리 민족의 영웅들은 어쩌다가 그렇게 과격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아서, 천사의 부모들을 곤란에 빠뜨리고 마는가 원망스럽다.

아마도 위인 리스트의 문민화 작업, 말하자면 평화주의자와 예술가와 문인을 위인 리스트의 중심에 올려놓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싶다. 그래야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주몽과 연개소문과 달리 주먹 아닌 말로, 그리고 짓밟기보다는 협상을 통해 이득을 취하고 세상을 바꾸는 역사적 인물들이 더 자주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천사의 부모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관문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스포츠 뉴스이다. 지난 주 여러 방송사의 스포츠 뉴스들(그리고 많은 일간지 기사들)은 이승엽의 ‘도둑맞은 안타’에 대해 보도했다. 팩트는 단순 명료한 것이었다. 이승엽은 안타를 쳤지만 심판은 아웃 판정을 내렸다. 내가 보기에는 국내 야구에서 흔히 벌어지는 상황으로 심판이 착각할 만도 했다. 볼이 그라운드에 튕긴 후 순식간에 수비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포츠 뉴스는 심판들이 이승엽 차별 음모에 가담이라도 한 것처럼 소식을 전했고 안타를 도둑질당했다고 단언했다. 오늘날의 위인인 이승엽의 분노 폭발 장면이 이어진다. 이승엽은 서너 차례의 격한 발길질로 광고판을 우그러뜨리고 화난 표정으로 고함을 질러댔다. 편집된 영상의 맥락상 그는 정당한 분노를 표했고 정당한 폭력을 행사한 것처럼 묘사된 것은 물론이다. 자녀를 온건한 소시민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소박한 부모 처지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분노를 정당화한 것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승엽의 도둑맞은 안타’ 관련 뉴스의 상상력은 과도하게 종합적이다. 오심을 의도된 도둑질로 단언했을 때 스포츠는 다른 이질적인 것들과 엮였다. 독도를 둘러싼 우파의 도발이나 혐한류 만화책이나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영상이 그 오심 장면과 오버랩된 것이다. 야구는 야구일 뿐이다. 설사 문제의 심판이 골수 극우파라고 가정해도 그의 정치적 입장이 야구장에서 직업적 판단을 왜곡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그런 상상은 유감스럽게도 과대망상에 가깝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원숭이니 어쩌니 하며 침을 뱉는 누리꾼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언론은 좀 더 차가워야 할 것 같다. 과대망상에 전염되는 것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에게 해로운 일이다.

이영재/웹진 컬티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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