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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6 20:21 수정 : 2006.09.06 20:21

<개그야>의 제작진. 오른쪽부터 개그맨 김경식, 김정욱 피디, 노창곡 피디, 김성 메인작가

3시간20분 동안 세번째 점검
개그맨들 복도 앉아 연습 또 연습
피디·작가 냉정한 평가에 일희일비
녹화 직전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재미없어, 허무개그 더 넣어, 한방에 넘어가야지

1999년 시작한 한국방송 <개그콘서트>부터 2003년 에스비에스 <웃음을 찾는 사람들>, 2006년에 문화방송 <개그야>까지. 공개 콘서트 형식은 개그 프로그램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후발주자로 시청률 3%대에 허덕이던 <개그야>도 성큼 올라 지난주부터 10%를 웃돌았다. 한 꼭지당 3~4분이면 결판이 난다. 관객은 근거도 들이댈 필요 없이 “재미 없네” 한 마디로 선고를 내린다. 그만큼 만드는 과정은 살벌하다. 지난 4일 서울 문화방송 본관에서 <개그야> 연습 현장을 들여다봤다.

웃음은 인색했다. 오후 4시 김정욱·노창곡 피디와 작가 9명 앞에 선 개그맨들은 뻣뻣했다. 다음날 녹화가 코앞이다. 이날은 세번째 받는 점검이고 그만큼 고친 결과물인데 반응은 신통치 않다. 게다가 잠깐 출연하는 신인 윤치현은 구석에 박혀 우물우물 대사를 외웠는데도 막상 시험대에선 더듬고 말았다. 한국 농촌 총각과 결혼한 우즈베키스탄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내 사랑 나타샤’ 꼭지. 멧돼지 사냥을 주제로 잡았는데 피디와 작가들은 담배를 꺼내 물 뿐이다. “재미 없어. 더 짧게 가야해. 너무 평면적이야. 뒷 부분이 김새.”(김정욱 피디) 노창곡 피디가 나타샤 가족에게 사냥 도구만 잔뜩 팔아먹고 가는 사깃군을 끼워넣자는 해결책 하나를 꺼내니 숨통이 틘다. 이어 진짜 아기 멧돼지를 사오자, 멧돼지를 찾아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장면을 넣자, 의견이 분분한데 뾰족한 수는 없다. 하여간 결론은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습실 밖 복도에는 출연자들이 철퍼덕 앉아 연습을 한다. ‘나타샤’의 남편역을 맡은 박재석은 어깨가 쳐졌다. “많이 수정한건데…. 솔직히 밤 새고 짰는데 재미 없다고 하면 표정 관리가 잘 안돼요.” 신인 윤치현은 “대사가 바뀌어서 미리 못 외웠다”며 머리를 긁적인다.

‘내사랑 나타샤’ 코너의 박재석, 김세아, 이종호(왼쪽부터).

많이 고쳤는데, 밤새고 짰어요, 오늘도 밤새야겠네

그들만의 시련은 아니다. “대가리를 머리로 바꿔라.” “고개를 천천히 돌리고 시선은 여길 향해라.” “액션이나 허무개그를 더 넣어라.” “한방에 딱딱 넘어가야지.” 깐깐한 주문이 이어진다. 부자 흉내 내는 겉멋에 코웃음을 날려 인기를 끌고 있는 ‘명품남녀’의 남정미, 조현민, 김주철이 연습실 밖으로 나오자 동료들이 묻는다. “너희도 까였냐(혼났냐)?” “공연장에선 괜찮았는데 제작진은 약하다고 생각하나봐요.”(김주철) 그래도 ‘고독한 킬러’보단 낫다. 여자 킬러를 들여와 변화를 주려다 원래 콘셉트나 제대로 가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저 친구들은 아마 오늘 밤 새야 될 거예요.”(김정욱 피디)

<개그야> 시청률의 견인차인 ‘사모님’ 김미려와 김철민은 능청스럽게 폭소를 끌어냈다. 김미려가 내뱉은 “뷁(말이 안 통하거나 기분 나쁠 때 누리꾼들이 쓰는 말)”이 통했다. 오랜만에 터진 깔깔거림에 연습실에 화색이 돈다.


저녁 7시20분 이날 점검은 끝났다. 하지만 복도는 여전히 개그맨들 차지다. 제작진은 다른 회의실로 몰려갔다. 다음날 리허설이 두 번 남았다. 김정욱 피디는 “녹화 10분 전까지 계속 바뀐다”고 말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의 조연출부터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을 거친 그이지만 이런 형식의 개그는 처음이다. “<개그야>의 콘셉트?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다만 공감이 가고 여운이 남게 만들고 싶죠. 스타들이 있는 <개콘> 등을 보면 한마디로 부럽죠. 우리는 모두 신인이잖아요. ‘사모님’ 덕에 <개그야>도 입소문을 타고 있지만 캐릭터를 확실히 가진 개그맨이 아직 없어 고민이에요.” 단칼에 쓰디쓴 평가를 내놓을 때 그는 확신에 차 보인다. “느낌이 올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죠. <웃찾사>의 ‘언행일치’를 처음 보고는 왜 웃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솨솨”거리기만 하는 것 같고. ‘내가 이런 개그엔 감이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꼭지마다 확실한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알아요.”

무르익은 공개 콘서트형 개그프로그램들은 진화는 아니더라도 변화는 보여주고 있다. <개콘> ‘골목대장 마빡이’에서 옥동자 정종철은 계속 이마만 쳐대다 끝내는 슬랩스틱의 꼭지점을 보여줬다. <웃찾사> ‘언행일치’는 논리 따위는 엿이나 바꿔먹으라는 태도다. 그에 비하면 <개그야>에는 아직 어디서 본 듯한 것들이 많다. “다른 프로에서 연인 이야기 하고 있다고 우린 하면 안 되나요? 다른 프로에서도 옛날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썼던 소재를 지금 상황에 맞게 바꿔 터뜨리기도 해요. 물론 공개 콘서트 형식 자체는 후발주자로 따라가고 있어요. 이게 유행이니까요. 짧은 콘텐츠를 퍼나르는 인터넷 문화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이런 형식이 꼭 옳은지는 모르겠어요. 앞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 꽁트 등 다양한 개그를 만들면 좋겠어요.”(김정욱 피디)

글·사진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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