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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3 20:03 수정 : 2006.09.13 20:03

TV 보는 남자

지난 10일 방송된 〈문화방송〉 스페셜 ‘위험한 욕망-도박중독’은 도박 중독이 오랜 치료가 필요한 정신 질환이라고 했고 〈한국방송〉 뉴스도 얼마 전 비슷하게 설명했다. 과학자들의 주장을 옮긴 것이니 사실이겠지만 허전하다. 도박 중독은 뇌 질환인 동시에 경제 구조의 병리 현상이 아닐까. 요즘 세상이 걱정하는 것처럼 서민들이 도박의 유혹에 취약하다면 그것은 경제적 약자의 뇌가 도파민을 더 많이 분비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돈을 벌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고 아무리 셈을 해봐도 부자가 될 날을 기약할 수 없어, 차라리 위험한 돈벌이에 나섰다고 봐야 한다. 도박 중독을 정신 질환으로 설명하는 태도는 너무 냉정하다 싶다. 반면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분석들도 있다.

“(도박판에 돈을 잃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고단한 삶에 지친 우리네 서민들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력시장의 근로자들, 가정주부들까지도 휩쓸렸다고 합니다.” 한 저명한 변호사가 텔레비전에서 그렇게 안타까움을 표했다. 진심으로 보였다. 하지만 논리가 흡사한 이들이 너무 많아 찝찝하다. 곤경에 처한 하층에 깊은 연민을 토로한 후 그것을 발판 삼아 분노의 격정을 쏟아내는 것이 판에 박힌 공식이다.

매일처럼 그런 소리를 듣다 보면 감사하기도 하지만 불경스럽게도 의심이 든다. 낯설다.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서민을 뜨겁게 사랑해왔다는 말인가. 정말일까. 경제적 하층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깊다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번 도박판 스캔들을 계기로 도박장만이 아니라 서민들을 옥죄는 경제적 차별도 날려버리는 게 한 가지 방법이다. 가령 엘리트들이 거사를 꾸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에게 적당한 부를 한아름 안겨주면 된다. 그 자산은 경제적 약자의 작은 실수가 완전한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미래의 안전판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급진적 분배가 어렵다면 과거라도 치유하자. 도박판에서 전 재산을 날려버려 가족들을 최악의 위기로 빠뜨린 서민 중에서 갱생의지가 있는 이들을 선별하여 회복의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 주자. 도박판 때문에 파산한 서민들이 부지기수이며 그 처지가 너무나 가련하다고 외쳤던 엘리트들은 동의할까. 아닐 것 같다. 그들의 신앙은 파이의 크기다. 그런 까닭에 도박판 정국에서 엘리트들이 남발하는 서민들에 대한 애정 표현은 겉치레이거나 감정이 격해 실수로 뱉은 자기모순의 실언일 공산이 크고, 그 때문에 엘리트들의 한숨 소리가 가끔은 지루한 것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너무 자주 듣게 되는 도박 광풍에 대한 분석들은 차갑거나 뜨겁거나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의 도박 중독 현상은 돈을 풀어야 해결될 수 있다는 비교적 뻔한 사실에 방점을 두지 않는 것이다. 돈이 구석구석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서민들에게 돈을 벌 기회가 충분히 개방되어야 한다. 그래야 강원랜드도 경마도 로또도 게임장도 인기가 시들 것 같다.

이영재/웹진 〈컬티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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