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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5 17:53 수정 : 2006.09.15 18:08

지난 7월11일~20일까지 열흘 동안 올해의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을 맡게 됐다.

지방의 한 호텔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일도 없이 오로지 심사만 하며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해야 했다. 2005년 6월 1일부터 2006년 5월31일까지 지상파와 그 자회사에서 방송된 작품이 심사 대상으로, 방송예술·저널리즘·정보공익 세 분야로 나눠 팀 별로 5명씩, 총 15명의 심사위원이 함께 했다.

난 정보공익 분야를 맡게 됐는데, 어린이청소년, 생활정보 ,지역생활정보, 라디오& TV, 그리고 특수대상 부문으로 총 66편의 작품 중 최우수작품 1편과 우수작품상 9편을 뽑아야 했다. 4일간 각 팀별로 예심을 치루고, 이어 본심이 이어져 전체 28편의 수상작을 뽑을 차례.

심사기준으로, 첫째, 출품한 분야에 성격이 맞는 프로그램인지, 둘째, 차별화된 기획으로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셋째, 사회에 끼치는 파급 효과, 넷째, 특집인지 정규 프로그램 인지 등을 삼았다.

예심에서는 의견조율이 어렵지 않았는데 본심에서는 15명이 다 모이다 보니 논란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지난 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PD 수첩-황우석 신화의 난자의혹’ 등이었다. 이 작품의 출품 분야였던 저널리즘 분과 예심에서는 최우수작품상을 예상하며 만장일치로 본심에 올렸지만, 반전이 이어졌다. 총 10명 중에 2표만 얻었을 뿐 최우수작품상은 커녕, 우수작품상도 못 받게 됐다. (참고로, 예심에 참여한 의원은 본심에서 표를 줄 수 없다)

“아니, 아무리 보도윤리 위반이라 해도 이 프로그램의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았는데, 하다 못해 우수작품상도 받아야 하는게 아닌가?”

“말이 저널리즘이지, 목숨까지 내놓고 취재하는데 과연 누가 보도윤리를 다 지켜가면서 얼마나 원하는 결과물을, 대답을 얻어낼 수 있을까?”


“이 프로그램에 상 주지 않으면 누가 앞으로 이런 저널리즘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냐!”

울분을 토하기도 했지만, 다들 너무나도 냉담했다.

다음날, 한 위원이 심사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PD 수첩’ 건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으니 다시 심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위원은 심히 비장했고,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방송협회의 담당자는 이럴 경우 심사위원 15인이 만장일치해야 다시 심사할 수 있고, 재심사 결과 2/3이상의 표를 얻어야 통과할 수 있다고 했다.

위원의 진심이 통했을까? 만장일치로 다시 심사하게 됐고, 결과는 2표를 뺀 13표를 얻어 결국 ‘PD 수첩’이 우여곡절 끝에 저널리즘 분과 보도 부문의 우수작품상과 올해의 방송인 ‘TV 프로듀서’(한학수 PD)부문을 차지했다.

두번째 논란은 ‘올해의 방송인’ 가수 부문이였다.

후보로는 강산에, 동방신기, 김종국, 플라이 투 더 스카이(Fly to the sky)가 올라왔다. 후보가 이렇게 나오니 우리나라 음반시장, 10대 위주의 음악프로그램 편성 등 모든 문제들이 불거졌다.

“노래는 하지 않고,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서 짝짓기나 하는게 가수냐?”

“노래 잘 하는 가수도 인기얻으려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한다.”

“아무리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어도 10대들에게 인기없으면 기타 연예오락 프로그램까지 출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최근 음반 발표도 하지 않은 강산에가 올해의 가수상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럼, 가수가 아닌, 조직적으로 만들어진 엔터테이먼트가 한류 인기 좀 얻는다고 해서, 10대들에게 인기라고 해서 올해의 가수상을 받아야겠는가?”

“가수가 음반 발표 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수로 살지 않는 건 아니다. 음반 준비를 위해 2년 걸릴 수도 있고 10년 걸릴 수 있다. 그리고 강산에는 엄염히 음악 활동을 위해 방송이 아닌 밖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주역이다.”

“이 상은 올해 방송에서 얼마나 열심히 활동했냐다! 방송 외에서 활동한 건 중요하지 않다.”

“그럼, 다른 가수들은 진정 가수로서 얼마나 활동을 했나?”

논란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투표가 이뤄졌고, 결국 강산에가 올해의 가수상을 차지하게 됐다.

시청자들 사이의 논란을 예상이나 한 듯, 시상식에서 강산에는 ‘뼈 있는’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조금은 냉소적인 태도로 “후보들이 대단한데 내가 상을 탔다. 상을 받지 않으려 했는데 상금이 있다고 해서 나왔다. 음…. 왜 내가 상을 탔는지 모르겠지만… 참, 심사위원들이 누구였는지 정말 잘한 것 같다.”

끝까지 반말로 수상소감을 마감하며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노래를 당당하게 불렀고, 방청객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심사가 끝나고, 한 위원은 우리가 너무 마이너리티를 옹호하고 상까지 안겨주는 게 아니냐며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단번에 “천만에요!”라고 외쳤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프로그램이, 그리고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다니. 마이너리티 방송은 무시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외국의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나 은근슬쩍 베끼는 프로그램이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시청률만 좇아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 프로그램도 없었다. 어려운 제작여건임에도 지역 주민이 진정 원하는 방송을 만들었다.

특히, 정보공익 분야의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한 마산 MBC ‘얍! 활력천국’은 마을마다 찾아가 노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프로그램인데, 결코 노인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 그야말로 노인이 주인공인 흔치 않은 수작이였다.

심사하면서 과연 어떤 이들이 제작할까 너무 궁금했는데 시상식에서 전 스탭이 무대 위에 올라와 아주 인상적이였다. 메인 PD 부터 AD, 진행자 남녀와 출연자 할아버지까지…. 마치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동네주민처럼 촌스러움이 다분했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 그리고 끝까지 웃음을 선사해주고자 애쓴 MC와 할아버지의 모습에 감동적이였다.

그들의 프로그램을 볼 때도 그랬다. 심사를 위해 본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재밌어서 프로그램에 빠져 보고 있는데 노인들이 진정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괜히 눈물이 났었다.

내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서인지, 이번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은 각별하게 다가왔다. 특히, 아나운서의 진행 멘트가 내 가슴을 뻐근하게 했다.

“‘근로자의 날’엔 근로자가 쉬죠. 어린이 날은 어린이가 쉽니다. 그런데 방송의 날엔 방송인이쉬나요? 아닙니다. 방송은 시청자 여러분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방송의 날에도 저희들은 열심히 방송을 합니다… (생략)”

올해의 방송인 부분에서 스탭진들을 소개하는 멘트는 이랬다.

“방송은 이렇게 수많은 이들이 각자 뒤에서 자기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각자 열심히 해낼 때 좋은 방송을 볼 수 있는 거죠.”

그렇다. MC나 유명한 PD처럼 스폿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각자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만 방송은 만들어진다. 그저 현장에서 보조로 뛰어다니며 잡일만 하는 FD도, 대본 복사하고, 큐 카드나 만드는 새끼작가라도, 어느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방송은 삐그걱거리기 마련이다.

스승은 제자를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난 심사를 하면서 오히려 현업에서는 배우지 못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왔다. 그저 방송이 좋아 신나게 달렸던 초심을 찾아 이제 다시 운동화 끈을 매려고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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