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는 남자
언제 어디일지는 모릅니다. 짙은 커튼을 친 승합차가 정문으로 슬며시 들어오면 학교가 살짝 맛이 갑니다. 밤새 클럽에서 놀아댄 싸이가 이른 아침 학교로 끌려갑니다. 동방신기는 수십 명의 찰거머리 팬들을 따돌리고 와야 합니다. 여차하면 지각이고, 수업 시간엔 엎드려 자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엔 담 넘기 일쑤인 친구들이 제일 먼저 달려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재촉도 필요 없습니다. 플래카드 한 장이 모든 학생들을 강당으로 내달리게 합니다. 〈스쿨 오브 락>(School of )입니다. 라디오 스타들을 죽이고 나타난 미국의 엠티브이(MTV)는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의 뮤직 비디오를 트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리얼리티 쇼의 선구 노릇을 한 〈리얼 월드〉, 펑크 키즈의 무료한 생태를 담은 애니메이션 〈비비스 앤 버트헤드〉, 블록버스터급 세트의 과격 몰래 카메라 〈펑크드〉 등 놀라운 감각의 쇼들이 거기에서 태어났다. 한국형 음악 채널 역시 서서히 자신이 할 일을 깨달아가고 있다. 〈바이브 나이트〉는 홍대 앞 클럽에서는 누구에게나 부비부비 댄스를 해도 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고, 〈재용이의 순결한 19〉는 악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막가파 랭킹 쇼로 ‘연예인 씹기 놀이’를 양지로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엠넷의 〈스쿨 오브 락〉처럼 꾸준하고도 끈끈한 사랑을 받는 코너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쿨 오브 락〉은 인기 가수나 연예인들이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깜짝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런 군대 위문 공연 같은 형태만으로는, 어디로 튀어나갈지 알 수 없는 십대들의 감수성을 붙잡으며 100회를 훌쩍 넘기고 10만이 넘는 학생들을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연예인을 만나는 학생들이야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겠지만, 시청자들로서는 가수들의 덜 세련된 공연을 매주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스쿨 오브 락〉은 ‘치밀한 작전’으로 우리를 기습한다. 예정된 천국의 기쁨을 더하고자 학생들을 잠시 지옥에 보낸다. 중간고사가 모두 끝나는 날 시험지가 유출되었다고 영어 재시험을 치른다는 방송, 더운 여름날 보충 수업을 받느라 고생이 많다더니 갑자기 지루한 자작시를 들려주는 교장 선생님, 일부 학생이 학교 밖에서 상상도 못할 불량스러운 일을 했다고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놓고 불호령을 내리는 학생부 선생님 …. 수업과 입시에 짓눌려 사는 학생들에겐 정말 ‘짜증 제대로’ 얹어 주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이때 어디선가 갑자기 펼쳐지는 〈스쿨 오브 락〉의 플래카드. 미친 듯이 무대 앞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면 언제나 코가 찡하다.“정말 좋구나. 미친 듯이 좋구나!” 그렇게 무턱대고 좋아할 수 있는 그 에너지가 부럽다. 그러면서 안쓰럽다. 가수들이 찾아와야만 잠시 틈을 내주는 대한민국의 학교들, ‘스쿨 오브 으악’이 더욱 미워지기 때문이다. 이명석/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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