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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7 19:57 수정 : 2006.09.27 20:01

시간보다 돈에 쫓겨 촬영일정 고삐
감정보다 사건 전개과정에 초점
멜로문법에만 익숙한 한국에
추리물도 많이 만들어졌으면

‘특수수사일지:1호관 사건’의 권계홍 피디

지난 13~21일 방송된 한국방송 4부작 드라마 〈특수수사일지: 1호관 사건〉(위 사진, 연출 권계홍, 극본 유승열)은 별종이었다. 가뭄에 콩나듯 한 추리물인데 뚝심 있게 끝까지 단단함을 유지했다. 주인공들의 감정 교류보다는 추리 과정에만 초점을 맞췄다. 청와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 형사의 실종, 대통령이 추진 중인 평화협정과 이를 방해하려는 음모가 얽혀 판을 벌인다. 이 아수라판에 현장 경험이 풍부하지만 무식한 김한수(윤태영) 경사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경찰이 된 박희영(소이현) 계장을 던져놨다. 지난해 단막극 4편을 만든 뒤 낯설어서 반가운 이 4부작을 들고 나온 권계홍(32·왼쪽 사진) 피디를 지난 22일 만나 제작 과정 등을 물었다.

관습 뒤집기=한수 캐릭터에 대해 ‘열혈 형사인데 여성 상사에게 너무 고분고분한 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보통 여성 상관에 남성 부하 설정에선 남성이 대들다가 티격태격하고 그러다 좋아하게 된다. 이런 형사 캐릭터나 관계 설정은 이미 많이 봤고 관습적이다. 또 음악으로 감정의 완급 조절을 하지만 이번엔 음악이 안 나올 듯한 데 넣었다. 드라마에선 잘 쓰지 않는 헤비메탈과 테크노를 깔았다.

맨땅에 집짓기=추리물 16부작은 모험이니 4부작으로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지난해 여름 유괴범을 쫓는 이야기를 대본까지 받아뒀는데 뒤집어졌다. 범인을 처음부터 보여줬는데 그러면 누가 궁금해하겠냐는 의견이 많았다.

통제된 공간, 청와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란 아이디어를 가지고 취재에 들어갔다. 관람객으로 청와대를 구경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경찰서, 경호업체 등을 돌며 물었다. 취조실, 부검실, 성분분석실은 동두천에 임시세트를 지었다. 청와대 겉모습은 강화도 호국교육원에 처마를 제작해 붙이고 철문에 봉황을 넣어 찍었다. 청와대 내부는 문화방송 드라마 〈진짜 진짜 좋아해〉 세트를 빌렸다. 춘추관 등은 호텔에서 찍었는데 사람 죽는 드라마라는 이유로 거절깨나 당했다.

시간보다는 돈에 쫓겼다. 보통 드라마가 회당 8000만원 드는데 이번에 9000만~1억원 정도 들었다. 손목 긋는 장면에 쓰일 가짜 손만 해도 200만원짜리를 사정해서 80만원 주고 썼다. 주검이 누워 있는 싱크대처럼 생긴 침대만 해도 원래는 3000만원인데 200만원 들여 만들었다. 돈을 아끼려면 촬영일정을 줄이는 게 최선이어서 33일 만에 끝냈다.

후반작업에 꼬박 한 달이 걸렸다. 한 편이 보통 900~1000컷 정도 되는데 하나하나 색보정 작업을 거쳤다. 전체적으로 차가운 푸른 기운이 돌게 만들고 싶었다. 피부 색깔까지 조정했더니 보기 싫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통령이 내리는 장면 따위에 쓰인 비행기 등은 삼차원 영상으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흔들린 결말=치정 사건으로 끝난 게 아쉽다. 기획 단계에선 달랐다. 사소한 실수가 살인이라는 복수를 낳는 이야기였는데 이해가 안 된다고들 해서 고쳤다. 이 드라마는 추리드라마의 완성된 형태라기보다는 본격 추리물에 시청자를 끌어들이려는 시작인 셈이다.

나의 미래?=한국방송 드라마국 피디 70명 가운데 여성은 모두 4명이다. 드라마를 택하니 모두 버틸 수 있겠냐고 물었다. 수십명의 제작진을 통솔하는 리더십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오기도 생겼다. 권위는 윽박지르기가 아니라 책임을 지는 데서 나온다. 이번 드라마에서 한수가 “아저씨는 아가씨 부하 하면 안 되냐”라는 대사가 있는데 시간이 빠듯했지만 부러 빼지 않았다.

주인공의 감정이 아닌 사건이나 소재를 따라가는 장르물이면 다 좋다. 귀신이 사람과 공존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왜 우리는 외계인이나 상상의 공간엔 관심이 없을까?

장르물의 미래?=외국의 성공한 작품을 교본으로 삼는 건 위험하다. 우리에게 맞는 주제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현실감을 살리려면 미술에 투자가 있어야 한다. 허접한 작품이라도 많이 나와야 한다. 멜로물과 추리물의 문법은 다르다. 시청자가 그 문법에 익숙해지려면 그만큼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특수수사일지〉의 시청률이 10% 정도였는데 장르물의 수요층을 반영하는 듯하다. 그 10%의 수준은 너무 높고 나머지 90%는 너무 무관심하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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