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11 20:06
수정 : 2006.10.11 20:06
MBC 피디 13명 한국현대사 굵직한 사건 20편 묶어내
문화방송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1999년 9월부터 2005년 6월까지 100편에 걸쳐 한국 현대사의 진실을 끄집어냈다. 제주 4·3, 보도연맹 학살, 삼청교육대, 기지촌 여성들의 수난 등 50년 넘게 묻혀 있던 현대사의 슬픈 맨얼굴을 담았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 이야기인 동시에 현대 한국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해설서였다.
이를 만든 피디 13명이 100편 가운데 한국 현대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줄 만한 굵직한 사건 20편을 골라 〈우리들의 현대침묵사〉로 묶었다. 역사의 기록이면서 취재 후기 구실까지 겸한 책이다. 방송에서 못 담은 내용이나 방송 뒤 바뀐 상황도 실었다.
책은 살인자가 되어야 했던 21살의 박흥숙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전남 광주 무등산 자락에 움막을 짓고 가족들과 살았던 박흥숙은 1977년 4월20일 오후 3시께 철거반원 4명을 살해했다. 제작진은 당시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꼼꼼히 수집해 그때 그 살풍경을 치밀하게 재구성한다. 철거반원이 불을 붙이고 모아둔 돈 30만원과 세간이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리자 박흥숙은 흉기를 휘두른다. 제작진은 1970년대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움막조차 허락받지 못했던 도시빈민의 삶을 두루 잡는다. 취재 과정에서 제작진이 겪은 고민도 담았다. “네명을 죽인 살인자를 미화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북파공작원, 녹화사업 등 권력이 짓밟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책에서 미스터리 추리물을 보는 듯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취재를 바탕으로 한 묘사는 세밀화처럼 구체적이다. 1970년 5월 한국 사회 실세들의 이름이 빼곡이 적힌 수첩을 지닌 여성 정인숙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오빠 정종욱이 살해범으로 지목돼 실형을 선고받는다. 제작진은 가로 115㎝ 세로 165㎝ 차에 피해자와 비슷한 모델을 앉히고 그에게서 30㎝ 이상 떨어진 곳에서 30~35도 각도로 총알이 날아왔다면 그 출발지가 어디가 될지 따라간다. 결과는 운전석에 앉았던 정종욱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쏘았는지, 중앙정보부 부장을 7년이나 지냈다가 파리에서 행방불명된 김형욱은 어떻게 됐는지, 아직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실타래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연좌제, 보도연맹 등 한국 사회를 옥죄어온 ‘레드콤플렉스’와 뒤틀린 한-일, 한-미 관계를 드러내는 사건들이 뒤를 잇는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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