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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6 09:04 수정 : 2006.10.26 14:36

〈황진이〉주연 배우 하지원

사극이 화려해졌다.

드라마에서 의상은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무생물 연기자다. 고화질에 대형 화면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옷이나 장신구를 대충 때우고 넘어갔다간 작품성까지 뚝 떨어지게 됐다. <주몽> <황진이> <연개소문> <대조영>까지 일주일 내내 밤 9~11시대를 사극이 채우니 시각적 차별성을 주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색다르거나 철저하거나=사극 의상은 진화하고 있다. 한국방송 2텔레비전 <황진이>는 고증보다 디자인에 방점을 뒀다. 영화 <음란서생>이나 <스캔들>에서 보여줬던 흐름을 잇는다. 탐미주의로 무장한 한복은 옛것에서 따왔을 뿐 고루하지 않다. 현대복보다 더 세련되고 파격적으로 디자인의 숨결을 담았다.

이와 달리 에스비에스 <연개소문>은 민족주의적인 극의 색깔에 맞춰 고증에 무게를 실었다. 150명씩 대규모 군중 장면이 심심하면 등장하는데다 그려야 할 나라만도 중국 쪽에선 수·당, 한국 쪽으로는 고구려 신라 백제까지 늘어서 있다. 고증을 바탕으로 한 물량 공세가 <연개소문>의 전략인 셈이다.

<황진이>, 더 매혹적으로=“사극이 고증만 한다면 누가 보겠어요.” 의상 팀장 양민애씨의 생각이다. 포스터부터 파격이었다. 타레머리는 비대칭으로 과장됐다. 밑선이 바짝 올라간 저고리엔 커다란 붉은 꽃망울이 흐드러졌고 소매의 곡선은 사라졌다. 치마는 꽃봉오리처럼 여러겹 겹쳐져 부풀어올랐다. 극의 배경은 16세기이지만 옷의 형태는 19세기 민화에서 참고했다.

“한복은 색이 곱지만 단순한 감이 있어요. 색깔을 세게 쓰고 원단도 현대적으로 해석했어요.”(양민애) 양 팀장 등 4명과 김혜순 한복, 주연배우 하지원씨의 스타일리스트가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연개소문〉의 유동근
드라마의 큰 그림인 시놉시스가 나오면 의상팀은 인물별 성격에 맞게 디자인한다. 황진이가 머리를 올리고 나면 청소년기의 파스텔톤보다 강렬한 색깔로 바뀐다. 동시대 여성들보다 자유롭고 격렬한 삶을 살았던 그에 맞게 옷의 무늬도 튄다. 다른 기녀들의 옷에 잔잔한 꽃무늬가 놓인다면 황진이의 옷엔 레이스 원단 등 쓰지 않았을 법한 것도 들여온다. 무늬도 난을 쳐 넣는 식이다. 황진이와 백무(김영애) 대 부용(왕빛나)과 매향(김보연)의 경쟁관계는 옷으로 드러난다. 부용에겐 차가운 색깔을 주로 입히고 빨강을 쓰더라도 황진이와는 달리 채도를 낮췄다.

“영화처럼 대본이 미리 나와 있으면 장면의 특징별로 인물에게 맞는 옷을 다시 나눌텐데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고 <비천무> 등 영화쪽 의상팀에서만 10여년 일했던 양 팀장은 말한다. 매회 최종 대본이 나오는 대로 옷을 만들어야 하니 연회장면이라도 끼면 숨가쁘다. 장면별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기는 역부족인 셈이다.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의 해석 방식도 다른 것 같아요. 시나리오는 전체적 흐름을 보고 의상을 강조해야 할 장면과 아닌 장면에 따라 리듬을 주는데 드라마는 계속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야 하니 매순간마다 강조점을 줘야 하죠.”


<연개소문>, 더 고구려답게=연개소문(유동근)은 첫회에 목부터 다리까지 생선 비늘 같은 작은 철조각(미늘)들을 달고 나왔다. 현대적으로까지 보이는 이 갑옷은 실은 “안안3호와 덕흥리 무덤 벽화를 재현한 것”이라고 에스비에스아트텍 이혜련 부장은 설명했다. 의상팀 5명의 책상 위엔 고구려 벽화자료부터 중국 수·당의 복식사까지 빼곡하다. 뿔이 솟은 고구려 장수의 투구, 신하들의 관모 모양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증거 자료들이 수북했다.

대규모 사극이다 보니 캐릭터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나 직위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을 옷으로 구별 지우는 작업이 먼저다. 의상팀은 중국과 한국의 분위기를 확실히 달리하려고 아예 수·당의 옷이나 장신구는 중국에서 원단부터 사고 만들었다. 은근 슬쩍 넘어가는 저잣거리 서민들의 옷도 자세히 보면 다르다. 중국은 목둘레가 둥글고 한쪽으로 치우쳐 여밈이 있다면 한국 쪽은 직선으로 떨어져 몸의 가운데서 만나는 식이다.

수양제 역을 맡은 김갑수

비슷한 갑옷이라도 연개소문과 을지문덕, 양만춘의 색깔은 미하게 다르다. 고구려쪽 의상을 맡은 허현영씨는 “연개소문의 상징을 청룡으로 잡고 푸른색을 기본을 했다”며 “기품과 위엄이 느껴지도록 단순하게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고증대로 하면 청동을 써야 하지만 그러다간 배우가 뒤로 넘어가도록 무겁게 되니 스테인리스로 대신했다. 중국 쪽을 아우르는 김슬아씨는 “수양제(김갑수)는 폭군이니 검정과 빨강의 강렬한 대비를 줬다”고 설명했다.

갑옷 등은 모두 ‘돈먹는 하마’다. 한벌이 수백만원대인데 연개소문만 해도 배우 유동근과 대역용으로 모두 4벌을 만들어야 한다. 미늘은 일일이 다 손으로 꼬메 넣어 갑옷 하나 완성하는 데 보름이 든다. 자수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이혜련 부장은 “대규모 고구려 사극이 처음이기도 해서 보통 사극보다 의상 비용이 2배 가까이 든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런데 대본이 방영 일주일 전에 나오니 의상팀과 발주를 받는 공장 사람들의 얼굴이 피로로 노랗게 뜨기 일쑤다. 김슬아씨는 대본에 ‘수양제 태자 책봉식’이 그려지는 걸 보고 아찔했다고 한다.

“신하들의 예복부터 모두 다시 만들어야 하잖아요. 자세히 보면 태자비의 옷엔 수백마리 꿩을 수놓았거든요. ” 대본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라고 쓰여지면 진짜 전투를 치르듯 일해야 하는 이들이 의상팀이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한국방송·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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