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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8 22:08 수정 : 2006.11.09 11:15

김수현

주말 막내리는 ‘사랑과 야망’

김수현(63)씨의 리메이크 주말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스비에스 토·일 밤 9시55분·곽영범 연출)이 오는 12일 81회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을 접는다. 지난 2월 첫발을 떼었으니, 방영시간만 회당 1시간씩 800여시간, 근 10개월에 걸친 여정이었다. 초반 10%대에 머물던 시청률은, 제작진의 말을 빌리면 “4부 능선을 넘으면서” 20%대로 솟아올랐다. 〈청춘의 덫〉(1978년, 1999년)에 이은 ‘다시 만들기’(리메이크)는 ‘방송 드라마 퇴행’ 논란도 빚어냈다. 20년 전 엠비시를 통해 방영되면서 열에 일곱 집은 티브이 앞으로 불러들였다는 이 드라마가 2000년대 중반의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많은 이들이 이 드라마에서 김씨의 전작들에 견줘 ‘그 어떤 다름’에 주목하는 듯하다. ‘김수현 작법이 달라졌다’는 반응도 꽤 된다. 물론 ‘김수현 드라마의 질긴 가족주의는 여전하다’는 비호감성 반응도 여전했다.

미자의 따뜻한 ‘변신’
원작과 2006년작 견줘보면

2006년의 〈사랑과 야망〉은 시청률 면에서 1987년 작(왼쪽)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전기수도 사용량으로 어림짐작하는 당시 시청률은 70% 이상이었지만, 파라미터로 측정하는 2006년의 평균 시청률은 19.2%였다. 전작 〈사랑과 야망〉은 1987년 1월부터 12월까지 60분씩, 98회를 방영했다. 2006년엔 2월부터 11월까지 70분씩, 81회를 방영했다. 20년 전 드라마를 기억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재탕이 아닌 새로운 것을 내놓기 위해 몇가지 차별을 보였다.

SBS 주말드라마 ‘사랑과 야망’

첫째는 시대적 폭이다. 1958년에서 1980년대 중반을 그렸던 전작을 1990년대까지 늘렸다. 전체 구성으로 보면 50~60년대는 좀더 함축적이며 어머니가 죽은 80년대 이후 가족들의 이합집산이 길어진 양상이다. 둘째, 3세대에 해당하는 정자의 아들(훈이)·딸(수경)의 비중이 커지고, 전작에 없던 명자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새로운 인물형이 나왔다. 수경이나 훈이는 질긴 핏줄이 대를 물리는 과정을, 반대로 명자는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말의 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 태수가 열차에서 내리는 첫 장면은 20년 전이나 후나 다름없었다. 태준이 미자의 뺨을 때리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버리던 20년 전 그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바뀔 듯하다. 제작진은 “마지막 방송에서 미자가 아버지와 내면적인 화해를 이루면서 태준과도 정상적인 관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결말에서 되짚어 가자면 전체 드라마 주제의 변화가 감지된다. 전작은 오일쇼크, 부동산 투기, 기업의 성장 등 시대적 환경을 담뿍 담은 시대극과 멜로극의 중간쯤에 서 있었다. 2006년 작품에서는 시대환경은 소재에 불과하다.

정자, 미자 등이 아버지와 화해하고 가족들이 이물감을 안은 채로 ‘가족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역정이 주를 이뤘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말수가 적어졌다…세월의 풍화작용

SBS 주말드라마 ‘사랑과 야망’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직설적 대사, 템포감 있는 전개, 특정 어미(보조어간)를 빼먹는 특유의 어법은 김수현씨의 전매특허. 그의 드라마에 대한 호오의 이유이기도 했다. 원작 〈사랑과 야망〉(1987년)과 〈목욕탕집 남자들〉, 〈사랑이 뭐길래〉 같은 김씨의 대표적 가족극에서 위력을 떨쳤다.

2006년판 〈사랑과 야망〉은 무엇보다 말수가 줄었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나이들어 가면서 이들의 말수는 눈에 띄게 적어지고 느려졌다. 제작진은 “몇십년을 같이 살아온 이들이기에 대사보다는 느낌과 감정 선으로 갈등을 풀었다”고 했다.

30년에 걸친 탈많은 가족사
주인공들 나이 들어가면서
‘속사포 대사’보다 감정흐름 무게
욕망 내려놓는 인물도 다른 느낌

때론 심사를 건드려대며 쏟아놓는 직설화법이 불편했던 이에게도 이 드라마는 특히 대가족의 버팀목이던 극중 어머니(정애리)가 사망한 즈음부터 사람 살이의 애잔함에 대한 공감을 자아냈다. 젊음의 좌충우돌 뒤에 이어지는 중년과 노년의 회한이 주는 어떤 짠한 감정. 예전 작품들과 견준 이런 이질감은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가 김수현 드라마로선 유일하게 한 집안의 젊은이들이 자라나서 늙기까지 30여년에 걸친 긴 시간을 다뤘기 때문이다. 종전 김수현 드라마는 대부분 가족 얘기를 다뤘으되, 언제나 오늘의 가족, 동시대의 가족을 다뤘다. 시청자 대부분이 사십대 이상이었다는 건 이 드라마가 그들에게 그들이 지나온 시절에 대한 향수를 제공한 것으로도 읽힌다.

미자, 가출하지 못한 노라

이 드라마에서 여성을 보는 이분적 시선은 여전한 편이다. 가족에 충실하고 가정의 울타리에 순응하는 여자들은 안정적이고 상식적이다. 은환(이민영)과 선희(이유리)는 그래서 사랑받는다. 자신만의 욕망을 가졌으며 때론 이 욕망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여자들은 불안하고 비상식적이다. 이들은 가족의 행복을 깬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고 때론 내쳐진다. 미자(한고은)-정자(추상미)-수경이 그렇다. 막판에 돌출한 ‘못돼먹은 며느리’(훈이 아내) 역시 가족 얘기를 소재 삼은 전작들에서 익숙한 김수현다운 캐릭터다.

강한 캐릭터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게 김수현 드라마의 특징이었다면, 이 드라마에선 캐릭터들이 굴절한다. 이 굴절 역시 ‘김수현이 달라졌다’는 느낌의 한 이유가 되는 듯하다. 시대를 앞선 탓에 세상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미자(한고은)는 김수현 드라마에선 드물게 자신의 욕망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다. 자신의 욕망과 가정 사이에서 번민하는 ‘노라’다. 미자는 배우로서의 자기성취라는 욕망에 다가서려는 고투와 좌절 끝에 자기성취 대신 남편과 가족과의 화해, 행복을 택했다. 이 굴절을 쉽사리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의 욕망과 가족 사이에 선 미자의 고투가 기다란 세월 속에 놓여 있는 탓이다. 가출한 정자(추상미)는 불운했고 세상에 내던져져 깨져나갔지만, 억척스럽게 삶을 일굴 때 (시청자의, 혹은 작가의) 연민과 사랑을 얻는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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