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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커플’ 인기비결
미국 영화 〈환상의 커플〉에서는 백만장자지만 이기적인 여자 조안나가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리자 목수 딘이 남편을 사칭하며 그를 집으로 데려온다. 한국 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여주인공 안나조(한예슬)도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밟아버리기 일쑤인 여자다. 영화처럼 사소한 시비 끝에 연장통까지 잃었던 설비공 장철수(오지호)는 한달 동안만 골려주자며 기억을 잃은 안나를 집으로 데려온다. 여기까지가 영화와 같은 설정이다. 그 뒤 드라마는 나상실이 된 안나가 남해의 한 마을에 살면서 “별로야, 꼬라지 하고는, 마음에 들지 않아” 같은 말투를 흩뿌리는 만화 같은 코미디의 세계로 달려간다.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드라마는 많았지만, 정말 장르적 재미를 주는 드라마는 많지 않았다. ‘심신 상실자 약취유인’에나 해당할 상황에서 이 드라마가 제대로 웃기는 이유는 인물들이 작심하고 슬랩스틱을 구사하면서도 절대 캐릭터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지한 순간에도 불쑥 휴대폰 광고나 치킨점 광고를 패러디한 장면이 튀어나온다. 아무리 로맨틱한 순간에도 안나는 어디까지나 ‘천하제일 거만녀’고, 장철수는 ‘짠돌이’다. 안나에게 학대당하던 삶이 끝났다고 만세를 불러놓고도 안나의 뒤를 밟고 다니는 남편(김성택)이나 더없이 착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실은 남자들 앞에서 쓰러져야 할 적절한 순간을 알고 있는 장철수의 옛 연인 유경(박한별) 등 극중 인물 모두가 단선적인 캐릭터와 거리가 멀지만,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다. 영화의 결말은 당연히 딘은 조안나에게 미안함과 사랑을 느끼고, 4명의 아이를 둔 딘의 아내 애니가 된 조안나는 새로운 삶에 눈뜬다는 것이었다. 드라마의 안나조는 10회를 넘기도록 변하지 않았으나 시청자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변했다. 코믹적 요소를 타넘고 인물의 외로운 마음에 시선이 가닿는다. 캐릭터에 공들인 작가의 수완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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