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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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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커플’의 한예슬
〈환상의 커플〉이 호평 받으면서 탤런트 한예슬은 데뷔 이후 최고의 인기를 맛보고 있다.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8일 경남 진주에서 만난 그는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환자복을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풀어헤치고 오후 내내 병원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 남해에 온 지 두어 달이 지났는데 회도 딱 한번밖에 못 먹었다고 한다. “촬영이 너무 빠듯해요. 이 아름다운 남해에 와서 이러고 있다니 나 너무 불쌍하죠?” 극중 장철수에게 툴툴대던 나상실처럼 한예슬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행복한 미소를 감추진 못했다. 연기는 나상실처럼 꾸밈없이 “꼬라지 하고는”, “어린이들” 같은 나상실 어록이 생겼는가 하면, 니트와 치마 패션도 유행이다. 타박타박 걷는 팔자걸음도 인기다. 네티즌들은 나상실 뇌 구조까지 그려댄다. 한예슬은 이런 반응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라고 한다. “욕먹을 각오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다들 나를 너무 좋아라 해주시는 거예요. 어쩜 좋아. 댓글로 좋은 말만 달려 있고.” 반말과 존댓말을 섞은 특이한 어투로 그는 “앞으론 미움 받는 역은 하지 말아야겠어” 하며 기자의 무릎을 툭 친다. ‘예쁜 척’ 이미지 벗어던지고…막가는 안나조-망가진 나상실오가는 능청 연기로 인기 절정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 한예슬은 2001년 슈퍼모델로 데뷔한 뒤, 외모 때문에 고생깨나 했다. 도시적인 얼굴과 솔직한 말투로 도도한 연예인의 전형처럼 여겨졌다. 〈논스톱〉의 깍쟁이 ‘예슬이’로 스타 대열에 낀 뒤엔 연기 변신도 쉽지 않았다. 〈구미호 외전〉 〈그 여름의 태풍〉을 거쳤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이번 배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던 ‘예쁜 척’을 벗어던졌기 때문이다. 그는 〈환상의 커플〉을 하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망가졌다. “자장을 입에 묻히고, 자동차 유리창에 얼굴을 비비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으니 제가 얼마나 공주처럼 느껴졌는가를 실감했어요.”(웃음) 처음엔 ‘꼬라지’라는 말도 입에 안 붙었다고 한다. 자장면은 좋아할까? “면류를 안 좋아해요. 그런데 연기하면서 먹어보니 맛있더라고요.” 허리를 곧추세워 걷던 그가 나상실처럼 팔자걸음을 걷는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란다. 나상실은 한예슬이 쟁취한 열매라는 점에서 그 맛은 더욱 달다. 그는 대본을 보자마자 안나처럼 꾸미고 감독을 찾아가 “내가 안 하면 후회하실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간절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도도한 안나와 털털한 상실이를 오가며 배우 한예슬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인생은 안나조처럼 당당하게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진주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사람들이 둘러싸지만 개의치 않는다.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느냐고 물으니 역시나 솔직한 대답이 돌아온다. “상실이의 몸뻬 바지를 입고 있으면 도망가고 싶고, 안나처럼 화려한 의상을 입으면 어깨에 힘주고 싶은 거 아니겠어요? 여자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일까? 밤 10시, 빌리박과의 회상 장면을 위해 모처럼 안나조 복장을 한 한예슬은 나상실 옷을 입고 있던 낮보다 오히려 생기발랄해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가는 스태프들과는 반대였다. 안나조와 나상실 중 그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주저 없이 “안나조”라는 답이 돌아왔다. “상실이가 사는 세계는 한정돼 있잖아요. 안나조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인터뷰 내내 당당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하고 싶은 연기도 〈툼레이더〉의 앤절리나 졸리처럼 강한 여성이다. 좋아하는 배우로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엄정화”를 꼽는다. 이렇게 자유를 갈망하는 그가 갑갑한 연예계 생활을 헤쳐나가는 비결은 뭘까.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게 마련이잖아요. 잘 안 되면 어쩌겠어요. 안 된다고 가슴치고 그러면 자기만 병나잖아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를 즐겨야죠. 그렇지 않나요?” 솔직함은 한예슬의 부인할 수 없는 매력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장윤호(프리랜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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