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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김혜자.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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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다우트’서 연기 변신으로 찬사
"몇 달 동안 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연극을 하니까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지네요." 중진배우 김혜자(65) 씨가 5년 만의 연극 나들이에서 완벽한 연기 변신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김혜자 씨가 출연하고 있는 무대는 5일부터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극단 실험극장의 '다우트'(연출 최용훈). 미국 최고의 현역 극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존 패트릭 쉔리(Shanley)의 '다우트'는 1960년대 가톨릭 학교를 배경으로 인간의 확신과 의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지적인 심리극이다. 원장 수녀인 엘로이셔스가 폴린 신부에게 보내는 의혹의 눈초리와 진실을 둘러싼 둘 사이의 갈등이 극을 이끌고 간다. 엘로이셔스는 폴린 신부가 학교 유일의 흑인 학생 도널드를 따뜻하게 챙겨주는 척 하면서 사실은 동성애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의심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운다. 엘로이셔스의 의혹과 폴린 신부의 결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순진하고 열의에 찬 초보 교수 제임스 수녀, 아들의 장래를 위해 폴린 신부와의 관계를 눈감아 줄 것을 요구하는 뮬러 부인 등이 극의 짜임새를 더욱 높인다. 김혜자 씨는 여기서 냉정하고 규율에 엄격하지만 언뜻 언뜻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는 엘로이셔스 원장 수녀 역할을 맡아 의심과 확신을 오가는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주고 있다.미술과 음악 등 예능 수업은 시간 낭비라고 혀를 차고, 멋으로 손톱을 기르는 폴린 신부에게 "손톱 좀 자르세요"라고 면박을 주며 극의 말미에서는 "모든 게 다 의심스럽다"고 절규한다. 따뜻하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미지를 가진 김혜자 씨를 떠올릴 관객에게는 너무나 낯선 모습이 아닐 수 없다. 11일 저녁 공연이 끝난 뒤 아르코예술극장 분장실에서 김혜자 씨를 만났다. "극 시작할 때 하도 연기 변신을 할 거라는 기사가 많이 나가서 다행히 충격 받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사람에게는 다양한 측면이 공존하잖아요. 어쩌면 냉정하고, 의심에 찬 인물도 내 모습의 일부일 수 있겠죠." 그러잖아도 대본을 처음 받아들고 엘로이셔스가 왜 이렇게 차갑고, 딱딱한 성격으로 변했던 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다고 했다. "엘로이셔스의 대사 중에 남편을 전쟁에서 잃고 수녀가 됐다는 구절이 있잖아요. 제 생각에 이 여자는 남편과 함께 4-5년간 너무나 행복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남편과 사별한 뒤 모든 가치를 회의하게 된 것 같아요. 자신과 그토록 가까이 있던 사람과 행복이 허무하게 떠나는 걸 보며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구나 싶었겠죠." 연극은 김혜자 씨가 출연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5년 전 '셜리 발렌타인' 공연 때 그랬듯 주부 관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주일 간 저녁 공연보다 낮 공연 때 객석 점유율이 높은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랜만에 연극을 했는데 이렇게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지인들이 극장에 와서 연기를 잘한다며 칭찬하는데 사실 저는 지금 잘하고 있는 지 너무 걱정이 돼요." 또 5년 전 공연했던 '셜리 발렌타인'보다 곱절은 힘든 건 같다고도 말했다. "굉장히 사람을 긴장시키는 연극이에요. '셜리…' 는 모노 드라마라 혼자서 극을 다 이끌어가야 했지만 극을 하면서 울고, 웃고, 치유되는 측면도 있었는데, 이건 2시간 내내 계속 딱딱하게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지 공연이 시작된 이후로는 음식을 먹기만 하면 체해서 주스와 물만 마시는 일이 잦고, 공연이 끝난 뒤 집에 돌아가면 쓰러져 잠자기에 바쁘다고 했다. 그는 "극중이긴 하지만 뭔가 계속 의심하는 일에 에너지가 훨씬 많이 필요하잖아요. 실제라면 그렇게 못해요. 그냥 믿고 말지"라며 손사래를 쳤다. 연극 '다우트'는 14일까지 계속되고, 연말에는 울산(24-25일)과 김해(29-30일)로 장소를 옮겨 공연할 예정이다. 김씨는 5일 막이 오른 뒤 쉬는 날 없이 열흘 연속 무대에 서는 등 강행군을 하고 있다. 서울 공연을 마친 바로 다음날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도우러 월드비전 홍보대사 자격으로 에티오피아로 출국한 뒤 지방 공연 하루 전날에야 귀국하기 때문에 쉬는 날이 없다. "12월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무리한 일정인 것을 나도 알아요. 하지만 모처럼 하는 연극이니까 좀 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나네요. 아이들을 돕는 일도 내가 꼭 해야 할 일이구요." 한편 실험극단은 내년 3월15일부터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이 작품을 갖고 장기공연에 들어간다. 소극장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 "기운이 너무 빠져서 내년에도 무대에 설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어요. 공연이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많이 남기는 하죠. 좀 더 생각이 필요할 것 같네요." 김씨는 인터뷰가 끝난 뒤 "가장 중요한 말을 빠뜨렸다"면서 "최용훈 연출가가 정말 큰 힘이 됐어요.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도요"라며 주변사람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현윤경 기자 ykhyun14@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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