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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03 17:29 수정 : 2007.01.03 17:29

지금은 방송중

2년 전 가을, 나는 한국방송 <드라마시티> ‘제주도 푸른 밤’으로 데뷔했다. 텔레비전 화면에 내 이름이 나오자 가족들은 비명을 질렀고, 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시청자 게시판엔 호평이 넘실댔고,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가 날아들었다. 열연했던 두 배우는 그해 연말 시상식에서 단막극 배우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엔 반프 티브이 페스티벌과 몬테카를로 티브이 페스티벌에 출품됐다. 난 단숨에 작가지망생에서 주목받는 신인작가가 되었다. 만세!

그러나 착각이었다. 로또 당첨이 된 것 마냥 꿈에 부풀었던 마음,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거만한 마음, 이 모든 것은 정말이지 지독한 착각이었다. 그날 이후로 정말 눈곱만큼도 달라진 것 없이 똑같은 나날을 보냈다. 아니 달라졌다면, 지독한 불면과 고통과 번뇌의 밤들에 익숙해졌다는 것과 입봉작이 유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살게 되었다는 것. 작가가 된 뒤에야 작가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와 고난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계속 작가로 살기 위해서는 죽어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하고, 그것이 방송되기까지 지독하게 길고 고달픈 여정을 겪고 또 겪어야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순진하고 열정적인 신인작가에서 점점 하이에나처럼 거칠고 굶주린 작가가 되어갔다. 이겨야 했고, 가져야 했고, 성취해야 했다. 그래야만 먹고 살 수 있었으니까.

지난 몇 달, 새 작품을 기획하면서 나는 선뜻 소재를 선택하지 못하고 갈등했다. 좋은 작품을 쓰는 훌륭한 작가가 될 테야! 했던 그 순수한 마음가짐은 불과 2년 만에 시청률도 잘 나왔으면, 작품성도 좋았으면, 인정도 받았으면, 하는 사심으로 채워져 머릿속은 어지러웠고 그 결과 단 한 줄도 못 쓰고 자판 앞에 앉아 연말을 보내야만 했다.

2006년 마지막 날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행복하고 운 좋은 사람에서 지긋지긋하게 고통스러운 밥벌이를 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통곡했다. 그 눈물과 함께 욕심들이 모두 다 쏟아져 내 몸 밖으로 구정물이 되어 흘렀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쓰리라 마음먹었던 그 열정만이 아주 작은 새의 심장처럼 내 가슴에 남은 채 내 2007년이 시작되었다.

최고는 아니어도 좋으니 최선을 다할 것, 훌륭한 작가는 아니어도 좋으니 진정성 있는 작품을 쓸 것, 내가 가진 작가라는 이름에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 수첩에 빼곡하게 새해 다짐을 적어 넣으며 나는 여전히 자판 앞에 앉아 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적는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파이팅’

박지숙/ <연애> <후> <도망자 이두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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