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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31 17:27 수정 : 2007.01.31 17:27

지금은 방송중

지난 29일 방송됐던 한국방송 시사 기획 〈쌈〉의 ‘박찬호와 마이클 조든’을 취재하면서 한국 스포츠가 아직도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는 이미 21세기 최대의 글로벌 콘텐츠 산업으로 진화했지만 한국 스포츠는 여전히 권위주의 시절의 제도와 시스템에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스포츠 세계화를 통해 한국 스포츠의 현실을 진단한다는 생각은 사전 취재 과정부터 벽에 부딪쳤다. 국내 프로 스포츠 관계자들에게 스포츠 세계화는 먼 얘기였다. 그들에게 한국 스포츠가 끝모르게 침체하는 원인은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 전략이 아니라 국내 언론이 외면하는 탓이었다. 한 고위 관계자는 방송사가 국내 스포츠를 홀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분노했다. 다른 종목의 고위 관계자는 세계화라는 내용이 너무 복잡해서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만약 그분들이 정말 스포츠 세계화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에 대응할 전략이나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이야말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각국의 스타를 영입함으로써 그 나라의 미디어 시장에 침투하는, 지역화를 통한 세계화 ‘글로컬라이제이션’은 전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형적인 스포츠 세계화 전략이다. 박찬호는 한국 스포츠가 글로벌 스포츠 시스템에 수동적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의 핵심 전략은 스포츠 민족주의를 활용하는 것이고 박찬호는 한국 시장을 여는 데 더없이 적절한 한국적 영웅이었던 셈이다.

박찬호의 미국 진출 과정에서 한국의 스포츠 미디어 시장도 혁명적인 구조 변화를 겪었다. 전통적인 방송사의 협력 시스템은 붕괴됐고 무한 경쟁 체제가 도입됐다. 그 과정에서 박찬호 중계권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연 30만달러 수준에서 10여년 만에 연간 1300만 달러 이상으로 폭등했다. 반면 지난 97년 200억원대에 거래됐던 프로 농구단의 자산 가치가 2003년 30억원대로 폭락했던 일은 한국 스포츠의 처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포츠 세계화라는 현실을 거부한 대가는 양극화의 맨 아랫자락으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스포츠는 한국 시장을 포함한 세계 스포츠 시장을 휩쓸고 있지만 국내 스포츠 산업은 사실상 파산 상태나 마찬가지다. 세계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스포츠를 살리기 위해선 제도적 지원을 통한 산업화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동안 줄곧 취재를 거부하던 미국의 한 스포츠 리그는 한국방송의 스포츠 뉴스에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콘텐츠를 방송한다는 계약을 맺는다면 취재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철저하게 사업상 손익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스포츠 비즈니스의 세계다. 무리한 요구였고 당연히 거절했지만 아직도 적당히 로비를 해서 현대 야구단을 매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한국 스포츠 산업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가야 할 길은 너무나 먼데, 시간이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정재용/〈한국방송〉 스포츠 기자


시사기획 ‘쌈-박찬호와 마이클 조든’ 제작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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