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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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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에 대한 우려와 맞아떨어져…연장방영 완성도 떨어져 아쉬움
티브이가 있는 집 열에 네다섯은 봤다. 문득 월·화요일이면 습관처럼 집으로 종종걸음쳤던 이들이라면 섭섭할지도 모르겠다. <문화방송>의 인기극 <주몽>이 6일 제81회를 끝으로 10개월에 걸친 긴 행보를 접었다. 고구려의 내분을 피하고 또다른 새 나라를 열겠다고 길 떠나는 소서노의 뒷모습은 코끝을 시큰하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소서노 역의 한혜진은 5일 열린 이 드라마 종방연에서 복받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인기비결 되짚어보면=뭐니뭐니해도 ‘고구려’라는 나라가 가진 상품성이다. 발해를 다룬 <대조영>(시청률 19~21%대)과 다른 점이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의 역사왜곡이 불지른 민족주의적 ‘울분’을 <주몽>은 알뜰하게 흡수했다. 주몽과 소서노 건국신화에 해모수·유화부인 설화까지 쫀득지게 버무려 고대 사극 열풍에 불을 지폈다. 더욱이 <주몽>은 시시때때로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옛조선의 영광 회복’을 거론함으로써 고구려사와 옛조선(고조선)의 역사를 곧바로 이어붙여 놓았다. 고구려가 옛조선을 계승한 나라라는 드라마의 인식은 역사학계에 따르면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건국신화를 지녔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드라마 초반에는 고대국가 초기의 특성이라 할 신권(여미을)과 왕권(금와왕·대소)의 긴장관계가, 초중반엔 한나라를 둘러싼 정치적 입장과 관련해 한나라의 실체적 힘을 인정하는 실리파와 옛조선 부활이라는 대의를 앞세운 명분파의 대결구도가 극적 탄탄함을 높였다. 현실론을 내세워 ‘친’한나라 노선이 살길이라고 보는 대소-부득불의 실리파와 ‘반’한나라 노선을 걸었던 주몽-금와-해모수의 명분파의 대결을 보며 강대국에 휘둘렸던 한국 현대사를 대입해 보는 재미도 보태졌다. 드라마에선 주몽의 견해가 압도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설파됐지만, 대소의 입장이 현실 정치에선 만만한 것만은 아니다. <주몽>의 평균 시청률은 41%로 집계됐다. 2000년 이후 방영된 드라마 중에선 <대장금>(41.6%), <파리의 연인>(41.5%)에 이어 세번째(티엔에스미디어코리아 기준)로 높은 수치다. 1992년부터 잡으면 12위(에이지비닐슨 기준·슨·1위 <사랑이 뭐길래> 59.6%)다. 사극을 잘 보지 않는 20대 여성도 8%라는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주몽>이 빚진 것=지난해 말 연장 방영이 예고되던 즈음부터 극적 긴장도는 급히 떨어졌다. 설란과 원후, 예소야, 유화 캐릭터에 지나친 시간을 할애하면서 빚어진 부여궁 암투의 지지지부진한 되풀이는 조선 궁중사극의 전철을 되밟는 듯했다. 예소야를 부각시키는 주몽-소서노-예소야 삼각 멜로 구도의 늘어짐은 ‘혹시나’ 하며 관성처럼 <주몽>을 관람했던 이들의 실망감을 자아냈다. 소서노 상단의 사용 행수 역을 맡은 배우 배수빈이 지난달 <한겨레>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주몽>은 소서노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소서노 세력이 황제자리를 요구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겐 갑작스럽게 비칠 만했다. 주몽의 활약상 묘사 장주몽의 활약상 묘사 장면에 치중하다 보니, 고구려 건국을 위해 소서노가 남쪽 해상세력과 담판을 지은 활약상이나 정복전쟁 과정의 활동은 ‘그랬다’는 식으로 기술되는 데 그쳤다. 장면 묘사는 생략됐다. 주몽 시청자들이 줄곧 지적해온 전투장면의 소규모성도 마지막날까지 여전했다. 최종회에서 대단원의 절정으로 설정된 고구려-부여 연합군과 한나라 요동군의 대격돌 전투장면마저도 기대를 저버렸다. 양쪽 합쳐 고작 500명도 안돼 보이는 엑스트라를 동원한 전투라니. <주몽>은 연장을 하고도 막판에 졸속으로 문을 닫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동북공정을 너무 의식한 것일까, 주몽-유리로 이어지는 부계 승계를 너무 의식한 것일까? 유리의 주몽화에 시간을 할애하는 데 급급하더니, ‘반’한나라 대동단결 전선으로 부여 대소를 끌어들이는 과정이 지나치게 급작스럽게 진행됐다. 민족적 영웅화가 드라마 내내 진행된 주몽처럼 소서노도 막판 2회 분량에서 급히 영웅화하려다 보니, 주몽과 소서노 모두 인물 성격이 밋밋해졌다. 고구려 개국과 건설 과정에서 주몽의 업적을 부각시킨 것처럼 소서노의 활약상도 적절히 드러내줬다면, 주몽 다물군 세력이 성장한 것처럼 소서노 세력의 성장도 제대로 묘사해줬다면, 그래서, 양 세력의 팽팽한 협력과 경쟁, 긴장관계를 보여줬다면 개국 이후 정복전쟁으로 세력을 키워가는 고구려의 역사상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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