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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8 17:58 수정 : 2007.03.28 17:58

지금은 방송중

최완규 작가가 병원에서 숙식하며 〈종합병원〉을 쓴 이후로 의학드라마를 쓰려는 작가들이 병원 밥을 먹는 것은 필수가 된 듯하다. 의학드라마를 쓴 작가들이 가장 먼저 받는 질문도 ‘병원에서 얼마나 살았느냐’ 하는 것이다.

작가는 촬영할 병원이 정해지면 으레 병원 쪽의 협조를 받아 병실이나 당직실에 기거하면서 24시간 병원을 관찰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얼마나 격무에 시달리는지, 그 때문에 가족 혹은 애인과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따위를 알게 된다. 처음에는 우물거리듯 내뱉는 그들만의 ‘외계어’(의학용어)에 당혹감도 느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과 그 외계어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가운을 입고 생활하다 보면 때론 자판기 앞에서 환자 보호자들을 만나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어쩔 줄을 모르기도 한다.

오랜 시간 의료인의 세계를 취재하는 것은 현실감 있는 드라마를 쓰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드라마가 단순한 직업 소개에 그치지 않으려면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직업인들에게 동화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곳도 인간이 사는 곳이고 알고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하얀 거탑〉의 성공 요인 중 하나도 그런 데 있다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단지 병원 얘기라기보단 자신이 속한 사회로 보게 하는 것. 〈하얀 거탑〉에는 장준혁 부교수(김명민)와 이주완 과장(이정길)이 수술 방식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이 에피소드는 이주완이 과장이라는 계급으로 장준혁을 찍어 누르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런 상황은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법한 것이다. 가령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상사와 견해차가 있다 치자. 그럴 때 상사들이 어떻게 나오는가? 내가 옳고 상사가 그른데도 직급으로 찍어 누르지는 않는가? ‘인쇄 정길’이라는 별명을 낳은, 이주완 과장이 교수실에서 컴퓨터로 인쇄 명령을 하고는 의국에 프린트를 찾으러 허겁지겁 뛰어가는 장면 역시 그러한 측면에서 만들어진 에피소드다.

이러한 드라마적 리얼리티의 구축은 드라마 중반부의 외과 과장 선거 부분에서도 효력을 발휘했다. 원작 소설에는 나오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상황이라 빼 버릴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드라마 전반부의 백미이기 때문에 뺄 수가 없었다. 복안으로 떠올린 것이 극중 과장 선거가 우리가 늘 뉴스에서 접하던 정치인을 뽑는 선거처럼 보이게 하자는 것이었다. 뇌물 스캔들로 화제가 된 녹취록도 참고했고, 뇌물을 줄 때 사용하는 케이크 상자, 골프백을 등장시켰다. 그것들을 지하 주차장 트렁크에 넣는 장면도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과장 선거 부분을 특히 재미있어 한 시청자들이 많았다. 드라마의 위대함은 허구의 상황을 만들어 리얼리티를 주는 데 있다. 그 리얼리티는 ‘현실의 생생한 묘사’와 더불어 ‘당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이 살아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다.

이기원/드라마 〈하얀 거탑〉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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