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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 중인 윤택, 김형인씨 등 14명의 개그맨들이 11일 오전 서울 강남 압구정동 한 레스토랑에서 소속사인 스마일매니아(대표 박승대)와의 계약이 불공정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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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각목으로 패고…“10~15년 노예계약”… 지난달 말, 한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 리허설을 앞두고 개그맨들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갑자기 복도 한쪽에 서 있던 무명 개그맨들이 90도로 몸을 굽혀 큰 소리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만한 선배 개그맨이 들어선 참이다. ‘조폭’이 나오는 영화 <넘버3>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긴장감이 팽팽히 흐르는 연습실 주변, 갑자기 화장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에서 대사를 외우고 성대모사를 하는 목소리에서 떨림이 전해온다. 선배들 눈치에 내몰린 신인 개그맨들의 연습 소리였다. 이렇게 방송사 한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에서 개그맨 사이의 엄격한 선후배 위계질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관행이 최근 잇따른 ‘구타 사건’과 ‘노예 계약 파문’의 뿌리라는 것이 방송가의 폭넓은 지적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하고 대중문화가 성숙하면서 연기자·가수 등 분야에선 대부분 사라진 문제들이, 최근 ‘코미디’가 대중문화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개그계에서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엄격한 위계질서가 사건의 뿌리
방송사도 관행방치 면책 어려워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김진철(26·공채 18기)씨가 후배 개그맨 김아무개(29·공채 20기)씨를 대걸레 자루와 각목으로 여러 차례 때린 혐의로 11일 구속됐다. 또 이날 오전에는 <에스비에스> ‘웃찾사’의 임윤택(29·윤택)씨 등 14명이 소속사인 스마일매니아(대표 박승대)와의 계약이 이중계약이며 ‘노예문서’와 다름없다고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계약기간이 10~15년에 이르고 계약금은 없다시피 하다”며 “사장이 계속적인 방송 출연을 조건으로 계약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두 사건이 겉모양은 다르나, 개그맨 사이의 선후배 위계질서와 이를 바탕으로 한 불공정 계약이라는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는 경찰 조사 결과, 폭행 당시 김진철씨가 “이제 개그맨을 시작하는 놈이 차도 갖고 다니며 평소 건방지고 왜 튀냐. 왜 선배에게 인사도 똑바로 하지 않냐”고 말했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개그맨은 “김진철씨 혼자 한 행동이라지만, 군대에서 바로 위 고참이 신병을 다루는 것처럼 선배들의 암묵적 동의 아래 벌어진 일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영장 실질 심사를 마친 김진철씨도 “신인 때 나도 맞은 적이 있다”며 “지금은 심하지 않지만 개그맨 세계에선 아직 후배의 군기를 잡으려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웃찾사’에 출연하는 개그맨들도 박승대씨의 폭언 등 비인간적 대우를 비난했다. 임윤택씨는 “사장이 개그맨 출신이어서 기대가 컸으나 평소 폭언을 일삼았다”며 “한 사람씩 방으로 불러 계약서에 서명을 안하면 공연은 물론 방송 출연도 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말에 못 이겨 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다. 실제로 ‘웃찾사’에서 ‘병아리 유치원’ 꼭지에 출연했던 개그맨 김재우씨는 이면계약을 거절하다 방송 출연과 공연장 출입도 금지당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이면계약이 아니라 미래 시점부터 발효되는 장래계약”이라며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방송사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희극인실 등을 운영하며 이런 관행을 방치하거나 출연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일부 제작진이 위계질서의 가장 꼭대기에 군림하는 일도 있어왔기 때문이다. 변화의 움직임도 있으나 아직 초기 단계다. <문화방송>은 프로그램 경쟁력 차원에서도 지나친 위계질서가 부적절하다고 보고, 올해부터 당분간 공채 개그맨을 뽑지 않는 대신 오디션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한국방송>은 신인 개그맨 등용문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채 부작용의 일부 보완에 나섰다. 한편, 서울 송파경찰서는 개그맨 선후배 사이의 폭력에 대해 추가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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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대 스마일매니아 대표, “노예계약 아니다”
[현장] 스마일매니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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