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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서사 자체가 미화다 |
한-일 관계와 관련한 일본의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극우 성향의 일본쪽 패널들이 자주 내미는 논리가 있다. 그것은 ‘일본이 잘 했다곤 않겠다. 하지만 여러 차례 사과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문제삼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치면 임진왜란 같은 몇백 년 전 역사까지 거슬러올라가 사과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잘잘못을 떠나 ‘언제까지냐’라고 나오면 우리쪽은 당황하고, 결국 ‘진심으로 사과할 때까지’라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들은 ‘왜 진심이 아니라고 단정 짓는가’라며 꼬리를 문다. 언젠가 일반인들이 토론자로 나온 프로에서, 흥분한 중국쪽 토론자가 ‘몇 백년 몇 천년 영원히’라고 대답하자, 화면을 정지시킨 다음 묘한 뉘앙스의 음악을 까는 경우도 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들에게 징용에 끌려갔던 할아버지들,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 끌려간 땅에서 차별받으며 살았던 재일동포들은, 결단코 역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현재다. 그들은 살아 있다. 누가 그들을 죽은 역사로 취급하는가. 하나둘씩 그분들이 세상을 뜨는 지금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가슴 속에 남아 있고, 흘렸던 눈물은 뜨겁다. 때때로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 한쪽이 아프게 저려온다.
이 생생한 날 것 그대로의 현재를 어찌 임진왜란에 비교할 수 있나. 언제쯤에야 그 고통이 활자로나 배울 역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감히, 어느 누구도, 그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고통 앞에서 “언제까지 따져야 맘 풀려?”라고 물을 수 없다.
<제5공화국>도 마찬가지다. 도처에, 그 고통들이 살아서 흐느끼고 있다. 최근 일어난 <제5공화국>의 전두환 미화 논란은 팽팽했다. 미화라는 주장에, 객관적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사실 이 드라마 속에서 전두환은 결코 긍정적으로 그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제5공화국>과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일반사극을 보듯 과거의 멈추어진 서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전두환이 긍정적으로 그려져야만 미화가 아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간에,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일종의 역사 속 인물로 다가오는 자체가 불쾌한 것이다.
<제5공화국>은 역사가 아니라 현재다. 아직도 전두환은 우리 삶과 엉켜 있다. 어느 지역,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이 아니다. 내가 낸 성금을 비자금으로 챙겼던 정권이고, 그걸 자손대대 물려주는 인물이다.(이 돈 없어 교무실로 불려다닌 수많은 가난한 아이들에 대해 그는 생각해 봤을까)
전두환은 다큐가 아니라면, 또는 <그 때 그 사람들>과 같은 블랙 코미디의 추악한 주인공이 아니라면, 서사의 중심에 선 것 자체가 이미 미화다. 이 정서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느냐가 드라마 <제5공화국>의 관건이다.
박현정 드라마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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