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5 16:37
수정 : 2005.06.15 16:37
자의식 내려놓고 편안해진 노래
그곳에선 바람이 노래하고 별들이 그림을 그린다. 하늘엔 구름 한점 없고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퍼진다. 작은 꽃은 평화롭게 낮잠 자고 연인은 아무런 욕심 없이 소곤거린다(지도에 없는 마을). 이상은(35)의 열두번째 앨범 <로만토피아>다. 이는 로망과 유토피아를 합친 낱말이다.
“사랑의 에너지 전해주고 싶어”
“사랑에 빠진 지 여섯달 정도 됐을 때, 그리니까 머리 속에 불이 반짝일 때 쓴 노래들이에요. 이런 좋은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어요.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죠.”
그래서 이 앨범의 앞부분에 놓인 노래들은 그가 띄우는 달콤쌉싸름한 연애편지다. 또 그 ‘낭만의 세계’로 가는, 쉽게 풀어쓴 지도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 그대와 가고 싶은 곳~” 튕기는 기타 소리 위로 피아노가 또르르 굴러가는 ‘지도에 없는 마을’에선 첼로가 편안하게 감싸안는다. 피아노가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돌고래 자리’에서 그는 “핑크색 낙하산이 돼줄거야, 네가 구름 위를 걷고 싶어질 때”라며 “너와 함께 있으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여”라고 속삭인다. 알록달록한 노랫말들은 그의 경험이 밴 섬세한 그림 일기이며 사랑을 해본 이들이 고개 끄덕일 만한 동화다.
그렇다고 이번 앨범에서 사랑의 감수성만 도드라지고 그의 색깔이 묻혀버리는 건 아니다. “앞부분이 좀더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노래들이라면 뒷부분에선 잘난 척하지 않는 실험을 하고 싶었어요. 자의식이 없어서도 안 돼지만 어느 정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죠.” ‘레볼류션’05’는 장구 비트가 어우러진 일렉트로닉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그 위로 ‘아리랑’ 선율이 살짝 스며 나오고 해금이 장난스럽게 끼어들기도 한다. “서양 비트에 멈추지 않고 다른 시도를 하는 것도 혁명일 수 있죠. 자기 걸 조금 더 연구하면 새로운 게 될 수 있잖아요. 국악적인 힙합도 가능하고요. 클럽에서 그런 음악에 맞춰 춤출 수도 있죠.” 구도자 같은 노랫말도 여전하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새로운 꽃들은 비 온 뒤에만 자라나”라고 이야기한다. 콘트라베이스가 묵직하게 가라앉고 인도의 시타를 변형한 악기가 몽롱하게 울리는 ‘기나긴 여행’에선 “나의 세계가 세상과 어우러지고 마음이 하늘과 이어지는” 꿈을 꾼다.
“20대엔 ‘음악, 음악’하며 정신없이 달려갔어요. 칭찬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음악보다 나 자신을 앞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나서 음악 하는 게 아니라 음악 자체가 대단한 것이고 그렇기에 정성껏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러면서 슬럼프에 빠졌고 힘든 일이었지만 약이 됐죠. 사랑도 좌절도 결국 사람이 되라고 자연이 또는 신이 준 선물인 것 같아요.”
연애에 빠진 지 어느새 1년, 그는 “점점 정신이 든다”고 말한다. “처음, 순간, 진짜 자기를 보여주고 서로 알아보며 사랑을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이성을 찾아 가면서 ‘가짜 나’가 조금씩 나오기도 해 힘들 때가 있어요. 그래도 그 반짝 빛났던 모습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다보면 더 좋은 사람이 돼 있겠죠.”
그래서 그는 앨범 마지막곡에서 다시 노래한다. 장구와 가야금이 만나 쿵덕 장단을 맞추는, 지도에는 없는 곳, 이어도다. “쥐고 있던 초록빛 씨앗 보랏빛 흙에 심으리 …상상 속의 섬마을 이어도의 꿈 속에 그대와 나 춤추리 덩실덩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뮤직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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