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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5 17:57 수정 : 2005.06.15 17:57

에스비에스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의 조기종영에 시청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단순히 시청률 문제라면 그 시간대에 14%라는 시청률이 결코 낮은 게 아닌 데다, 최근 이야기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상승일로에 있었기에 더 납득하기 어렵다는 중론이다. 물론 결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점들을 뛰어넘을 만큼의 모험적인 시도와 성과도 이 작품에는 존재했다. 단순히 시청률이나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적 측면과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말이다.

방영 초기 벌어졌던 학력비하 논쟁을 예로 들자. 소유진이 “제가 고졸이라서…”라고 둘러대자 김수미가 윽박지르는 장면. 과연 학력비하인가?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보통 드라마에서, ‘고졸’이 존중받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공부는 잘 했는데 가난해서 대학을 못 간 경우뿐이다. 그렇다면 그 경우가 아닌, 머리도 안 좋고 공부에 취미도 없어서 대학에 못 가고 안 간 사람들은? 무슨 죄도 아닌데, 그들은 결코 다뤄지지 않거나 늘 단역이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도 않는 것처럼.

한데 이 작품은 그런 여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게다가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 <귀엽거나…>의 묘한 특성이 있다. 일반 드라마에서처럼, 시청자가 약자인 소유진에게 감정이입하여 강자에게 도덕적 단죄를 내리는 게 아니라, 강자도 약자도 아닌 제3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약자에게 거리를 두는 점. 때로는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점. 바로 이것이 학력, 외모, 계급 등을 비하한다는 오인을 받게 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자. 습관적으로 무조건 자신을 약자의 처지에 동일시하고, ‘그래, 학벌주의는 나빠’라고 쉽게 결론내리면서, 나 자신은 결코 그런 편견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듯 지나치는 것이 늘 옳은가? 오히려 소유진을 보고 웃다가 불현듯 자신 안에 존재하는 가학성을 깨닫게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말 날카로운 통찰이 아닐까? 때로 우리는 학벌주의를 욕하면서도 은근히 자기보다 저학력인 이에겐 우월감을 느끼고,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못생긴 수재를 보며 ‘저 얼굴에 공부라도 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 우리 안의 이중성과 모순을 쓴웃음 속에서 깨닫게 만드는 독특한 시각은, <순풍 산부인과>에서 시작된 ‘김병욱표 시트콤’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부분이다. 그리고 이 접근법이 학벌이란 금기시된 부분에의 풍자로 드러났을 때, 적어도 논쟁이 있었어야 했고 좋든 나쁘든 평가가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제대로 조명되기는커녕, 돌아온 것은 모호한 이유의 일방적인 조기종영이다.

문화방송의 경우 <단팥빵> 조기종영에 반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시청자를 존중하는 방송국이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를 에스비에스에 기대해서는 안되는 일일까?

박현정 드라마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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