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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메탈 20년 ‘지금 여기’ 삶 다다른 몸을 꿰뚫는 소리.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의 노래는 음악이 본래 물리적 울림인 걸 증명하듯 피부와 혈관을 두들겨댄다. 지난 16일 저녁 7시께 서울 홍대 앞 롤링홀에서 열린 그들의 8번째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는 소리의 예리한 창끝이 물리적 형체들를 공중분해하려는 듯 달려들었다. 주상균(기타·보컬), 정병희(베이스), 이원재(기타), 이관욱(드럼)의 블랙홀이 5년만에 내놓은 앨범 <히어로>는 그 광폭한 소리의 무기로 다듬어낸 삶에 대한 따뜻한 시다. “공허하나 가득하고 멀리인 듯 가까이에, 찰나이나 영겁이며 미진하나 존귀하다.” 산사의 종소리로 시작하는 ‘삶’은 불교 경전을 헤아리듯 앨범의 막을 연다. “세상은 텅 비어 보이지만 생명의 뜻은 꽉 차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인생은 짧지만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삶의 의미는 풍부하죠. 이번엔 그런 삶을 일궈가는 평범한 영웅들의 모습을 담았어요.” 전자음과 섞인 종·대금
‘우리’ 소리의 맛 우러나
“메탈, 가장 솔직한 솟리
다듬어야 하는 예민한 것”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풀잎을 어루만지는 햇살과 깊은 땅에서 솟아나 몸이 저리게 적시는 사랑”으로 태어난다.(땅과 태양의 아이) 그 아이는 자라 “지키고 싶던 가녀린 사랑을 위해” 운명을 지고 간다. 철커덩 공장 소리에 지난한 삶을 실은 ‘위하여’다. “자신을 희생하며 노동하는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해요.” 복고적인 리듬의 ‘포에버’에서는 “알고 있니, 미안한 나의 마음을”이라고 읊조린다. “열심을 다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고생시킬 수밖에 없는 연인의 고백이에요.” 기타의 처연한 흐느낌으로 시작하는 ‘처음 쓰는 편지’는 그렇게 묵묵히 살다간 아버지에게 띄우는 편지다. 이 노래들엔 흙, 땀, 눈물이 배어있고 민요적 정감이 흐른다. ‘삶’에서 주상균의 목소리는 끝자락에서 꺾이며 한을 어르고 대금은 질주하는 기타 위에 구슬피 운다. ‘달빛 아래 홀로 걷다’ 등 곡의 진행도 익숙한 옛 선율을 내비친다. “이 앨범은 유럽에서도 발매될 거예요. 그래서 어떤 게 우리 모습일까 더 생각해 보게 되고 어릴 때부터 듣던 토속적인 걸 찾게 됐어요.” 이어 이 모두와 극적 대비를 이루며 ‘어글리 히어로’가 튀어나온다. 기관총, 헬리콥터 소리에 얽혀 기타는 몸부림 친다. “죽여라, 죽음으로 몰아 넣어라”라고 외치는 자들이 그들이다. “진짜 영웅인 삶을 한번에 산산이 부숴버리는 가짜 영웅, 권력이에요.” 드럼, 베이스, 기타가 한꺼번에 내달리며 토해내는 외침 사이로 베토벤의 ‘영웅’ 멜로디가 거칠게 목을 뺀다. “삶에 대해 노래하는 건 블랙홀 음악의 핵심이에요. 우린 그냥 순수하게 살고 싶을 뿐이에요. 그런데 부닥치는 게 너무 많고 자꾸 다치게 되요. 그런 걸 노래로 만들어 왔죠. ‘깊은 밤의 서정곡’도 사랑 이야기인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세상과 부닥쳐 고민하며 지센 밤을 노래한 거예요. 그땐 가방이고 뭐고 무조건 검문하고 그랬으니까요.” 붉게 염색한 긴 머리를 휘저으며 무대를 쥐락펴락하던 주상균은 조곤조곤 수줍게 말했다. 마음을 담는 투명한 소리. 그렇게 그들이 1985년부터 20년 동안 헤비메탈에 기대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왔던 건 “가장 원초적이고 솔직한 소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교하게 다듬지 않으면 소음이 돼 버리기 쉬운 음악, 하루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티가 나는 예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량한 대중음악 시장에서 돈 되는 일엔 별 대책이 없는 이 섬세한 헤비메탈 전사들은 그 소리를 부여잡고 소박한 삶을 예찬할 뿐이다. “산이 되어 맏이하리 몰려드는 비 바람을 죽고 죽어… 꽃잎이며 이름 없는 씨앗이나 피고 피어”(이 몸이 죽고 죽어)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소니비엠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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