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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0 17:51 수정 : 2005.01.20 17:51

10·26 이후 상처 끊일 날 없어
뉴욕서 재즈공부 ‘불씨’ 되살려
열번째 음반 내고 분주한 걸음

심수봉(50)은 요즘 데뷔 25년만에 최고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루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방송 녹화, 신문 인터뷰 등 빡빡한 스케줄에 몸을 던지고 있다. 난생 처음 매니지먼트사와 계약도 했다. 올해로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에 접어드는, 그래서 남들 같으면 느긋하게 뒤를 돌아볼 만한 나이의 그가 이제 막 뜨기 시작한 가수 초년병처럼 바삐 뛰는 이유는 지난 15일 발매된 열번째 앨범 <꽃>을 알리기 위해서다.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그때 그사람’을 담은 데뷔 음반을 그 이듬해 발표한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정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던 그의 앞길이 가로막힌 건 같은 해 10월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최고권력자의 술자리에 앉게 되면서부터. 이후 그는 다른 가수들처럼 마음껏 음악활동을 할 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없었다.

방송 출연이 금지됐고, 언론은 끊임없이 파고들어 상처를 줬다. 음반을 꾸준히 내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무궁화’. ‘비나리’ 등 많은 곡들이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는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활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우연찮게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이 1위를 차지했던 가요 프로그램에서 ‘무궁화’를 부를 기회가 생겼는데, 갑자기 북받쳐오른 설움에 무대 위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2002년 창작욕마저 고갈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친 그는 재충전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훌쩍 떠났다. 재즈를 공부했고, 큰아버지인 심상권 명인의 가야금 연주 음반을 곱씹어 들으며 국악의 참맛에 빠져들었다. “한국에서는 조그마한 불씨도 못얻었는데, 예술가의 천국인 뉴욕에서는 용광로처럼 활활 타올랐다”고 떠올릴 정도로 음악적 욕구로 충만했다. 2004년 한국으로 돌아와 젊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박근태씨와 함께 음반 작업에 들어갔다. 늘상 혼자 작업을 해오던 그였지만, 좀더 나은 앨범에 대한 기대로 다른 사람과 처음으로 손을 잡은 것이다.

앨범에는 자작 신곡이 셋, 예전곡을 리메이크한 곡이 셋, 남의 노래를 새롭게 편곡해 부른 곡이 넷, 이렇게 10곡이 실려 있다. 신곡 가운데 뉴욕에서의 심정을 특유의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한 ‘이별없는 사랑’은 예전 스타일을 닮았지만, 차분하면서도 흥겨운 스윙 리듬의 ‘러브 오브 투나이트’는 새로운 느낌이다. 강한 록 비트에 인상적인 기타 솔로를 곁들여 편곡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도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주목을 끄는 건 실험성 강한 신곡 ‘남자의 나라’. 재즈와 국악을 접목한 3분박 리듬에 싱코페이션(엇박자)이 묘한 긴장감을 준다. “선녀 왜 떠났는지 나뭇꾼 아직도 모르나”라며 남성의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비꼬는 노랫말도 인상적이다. 남편이 “이 판은 이 노래 때문에 망했다”고 할 정도로 싫어하고 음반 제작진도 싣기를 꺼려했지만, 자신이 직접 다른 곳에서 따로 녹음해 실었을 정도로 강한 애착을 보이는 곡이다.

“그날 그사건 이후 미처 발휘하지 못한 음악적 열정을 지금부터라도 남김없이 불태우겠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 위로 25년전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가수 초년병 심수봉의 모습이 겹쳐졌다. 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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