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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치욕 35시간 생방송으로 기억”
무려 35시간짜리 라디오 생방송이 진행된다. 한국 방송 사상 최장 시간이다.강행군에 나선 이는 신철(37·사진)씨. 90년대 초반 혼성 듀오 ‘철이와 미애’로 이름을 날린 래퍼다. 89년 ‘나미와 붐붐’에서 동그란 검은 색안경을 쓰고 <인디언 인형처럼>을 부르던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돼 있다. 그 뒤 디제이 덕, 구피, 유승준, 제이 등의 앨범을 제작하는 프로듀서로 일해오다, 지난해 초부터 에스비에스 에프엠(103.5㎒)의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요즘은 매일 오후 4시 방송되는 <디제이 처리와 함께 아자! 아자!>에서 디제이로 활약하고 있다.
13일 낮 1시∼14일 밤 12시 방송사상 최장 생방송
“의료진·구급차 대기…디제이 경력에 이정표 될 것”
이번 35시간 연속 생방송은 오는 13일 낮 1시부터 14일 밤 12시까지 전파를 탄다. 광복 60돌을 기념하는 생방송이다.
“우리가 보통 일제시대를 36년이라고 잘못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정확히 따지면 34년11개월이기 때문에 35년으로 계산해서 시간을 정했습니다.”
일제시대 우리 겨레가 겪은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신씨는 35시간 내내 잠도 자지 않고 감옥처럼 꾸민 스튜디오 안에서 생리 현상까지 해결한다고 한다. 걱정도 없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 괜찮겠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조금은 걱정 되죠. 그래서 방송국 쪽에 의료진과 구급차까지 대기시켜 달라고 부탁했는데 별 일이야 있겠습니까? 프로그램 맡은 지 1년 반이 돼 가는데, 제 디제이 경력에 이정표가 될 겁니다.” 말끝에 터뜨리는 시원한 웃음 소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여러 디제이 가운데 그가 뽑힌 이유는 뭘까?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역시 실력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디제이가 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지만, 외국은 클럽 디제이에 가깝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그런 방면에 경험이 많기 때문에 35시간 동안 계속될 음악 방송을 진행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지금껏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꾸며온 것처럼, 이번 35시간 생방송에서도 트로트에서 힙합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을 리믹스해서 쉴새 없이 ‘논스톱’으로 들려줄 계획이다. 낮 시간에는 대학가요제 수상곡 등 장년층이 좋아하는 ‘7080 가요’를 리믹스로, 저녁 시간엔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댄스나 힙합을 라이브로 준비했다.
이번 35시간 생방송에는 가수 설운도·김수희·보아·디제이 덕 등이 초대가수로 나오고, 영화배우 박중훈과 개그맨 김대희도 스튜디오를 찾는다. 그는 평소 친분이 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자리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35시간 내리 스튜디오에 갇혀 지낸 뒤에는 1주일간의 휴가가 준비돼 있단다. 그가 방송하는 동안 다른 디제이들은 미리 쉬는 셈이니 공평하다고도 할 수 있다. “매일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휴가 동안 내보낼 방송분 녹음하랴, 음악 믹싱 작업 하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형편이에요. 하지만 제 역량을 총동원해서 최대한 멋진 프로그램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김진철 기자, 오수호 인턴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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