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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0 17:44 수정 : 2005.08.12 14:26

‘루루공주’

박현정의TV속으로

잘생긴 재벌이 나오고 부록으로 고급차, 화려한 의상, 최고급 인테리어에 “얼마면 되겠어!” 같은 ‘초현실적’ 대사가 나온다고 해서 모두 장사가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파리의 연인>의 손정현 프로듀서와 여주인공 김정은이 다시 뭉쳐 만든 <루루공주>는, <파리의 연인>의 대박으로 흥행공식이 된 모든 요소를 갖추고도 알맹이만은 쏙 빼놓은 드라마가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라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재벌 나오는 트렌디 드라마를 똑같이 취급하지만 차이는 있다. 적어도 <파리의 연인>은 새로움이라도 있었다. 남자의 아버지에게 불려가서 돈봉투를 받고, “왜 작으냐?”라는 대사에 “네, 작습니다!”라고 눙치는 김정은은 확실히 웃겼다. 그런 능청맞음은 당시 여자 캐릭터들은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또 <파리의 연인>은, 판타지이되 사람들의 욕망에 기초한 판타지였다. 아저씨 같던 박신양이 김정은과 사랑에 빠져 “애기야, 가자”라는 닭살짓을 하는 장면은, 연애라는 걸 하면서 어릴적 부모에게서나 받던 귀한 대접을 비록 이 나이지만 다시 한번 연인으로부터 받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제대로 겨냥하고 있었다. 어쩌면 커서도 누군가의 귀한 ‘애기’가 되고 싶어서 사람들은 연애라는 걸 하는지도 모른다. 이거야말로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렬한 판타지였고, 드라마는 그걸 꿰뚫고 있었으며, 박신양이 가진 부와 권력은 그러한 ‘아기놀이’ 판타지가 완벽하게 충족되는 수단으로 쓰였다.

<소공녀>에서처럼 돌아온 부자 아빠가 된 박신양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돈 없다고 딸네미 구박하던 나쁜 애들을 혼내주는 거였지 않은가. 물론, 여기에는 갖가지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고달픈 현실에 시달리던 여자주인공은 남자를 만나자 곧장 아기가 되어버리고, 남자는 아빠가 되어 그 아기를 잘 보살펴준다. 심리학적으로도 퇴행이고, 성역할의 측면에서도 진부했으며, 돈 없으면 아빠 노릇도 못한다는 자본주의사회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신드롬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적어도 동시대 사람들의 욕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존재의의가 있었다. 어른이 되고서도 많은 이들이 좋은 아빠를 갈망하고 있다는 점은 <파리의 연인>이 제대로 짚은 것이요, 그 좋은 아빠가 곧 돈 많은 아빠였다는 것은 패착이었다. 그것은 <부모님 전상서>의 송재호가 신드롬이 된 것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파리의 연인>은 제대로 짚었지만 잘못 풀어낸 케이스다. 하지만 적어도 비판하고 돌아볼 ‘거리’는 던져준다. 최소한 그 정도는 되었기 때문에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그런데 <루루공주>를 비롯한 수많은 <파리의 연인> 아류들은 무엇을 관찰하고, 읽어내고, 대변하고 있는가. 시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김정은이라는 이름값을 버리지 못한 20%의 대중을, 잘생긴 부자에 상류층 생활이라면 만사 오케이로 텔레비전에 몸을 던지는 파블로프의 개쯤으로 착각하다간 큰 코 다친다.

박현정 드라마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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