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7 18:22
수정 : 2005.08.17 18:25
이야기TV
광복 60돌인 올해 안방극장의 도드라진 특징 하나는 다큐멘터리의 약진이다. 대형 기념 공연과 특집 드라마가 없진 않았지만, 존재감이 미약했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시도와 웅숭깊은 눈길로 티브이 보는 재미를 만끽하게끔 했다.
앵글은 조금씩 달랐다. 각 방송사들이 대표로 내세운 특집 다큐들을 보자. 교육방송의 <도올이 본 독립운동사>는 국내는 물론 러시아와 중국 현지로 발품을 팔며,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 다큐를 관통하는 정조는 다큐치곤 이례적으로 격정이다. 도올은 1인칭 시점에서 참혹하고도 자랑스러웠던 독립운동사의 실상을 스스로 배우고 깨치며 느낀 바 그대로의 격정적인 어조로 내뿜는다. 동학 농민군의 처참한 패배와 사회주의 독립 무장세력의 분열과 붕괴를 이야기할 때 그의 분노와 좌절은 그대로 전파를 타고 시청자의 가슴 또한 저릿하게 만든다. ‘다큐는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지배적 통념과는 부딪치지만, 그럼에도 도올이라는 1인 미디어의 실험이 던지는 울림 또한 크다.
한국방송의 <우리는 8·15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도 새로움을 안겼다.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8·15의 기억을 구술로 되살려냈다. 거대 담론 속에 묻혔던 개개인의 삶의 결에 주목하는 순간, 다큐의 영역이 눈부시게 확장됐다.
문화방송의 <천황의 나라, 일본>은 정공법을 택했다. ‘천황제’를 프리즘으로 일본 사회의 분석을 시도했다. 일본의 본질을 내재적 논리로 살피기 위해 논란을 각오하고 ‘천황’이라는 명칭을 썼을 정도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렇게 다큐의 전형을 따랐으면서도 <천황의 나라, 일본>은 광복 60돌 한국 다큐의 도약을 대표하는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천황제’라는 일본 사회의 가장 깊숙한 비밀을 식민지배를 겪은 우리만의 피해자적 시각에서 바라본 게 아니라, 일본 사회 스스로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객관적 관점에서 실증적으로 해부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로 이점에서 <천황의 나라, 일본>은 한국방송 <케이비에스 스페셜> 특집 ‘기억의 블랙홀, 천황’과 함께 광복 60돌 한국 다큐의 지적 역량의 성숙을 보여주는 사례다. 언젠가 일본 <엔에이치케이>가 ‘천황제’의 의미를 돌아보는 다큐를 만들게 된다면, 이 두 다큐는 기초 텍스트의 하나가 될 것이다.
특집 다큐와 뉴스가 모처럼 조화롭게 어울렸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특집 다큐들이 풍성한 기획으로 눈길을 잡는 한편으로, 현충원 묵념과 사상 첫 국회 방문, 디제이 병문안 등으로 이어진 8·15 민족대축전 북쪽 대표단의 시원한 발걸음 또한 연일 뉴스를 타며 잠시나마 열대야의 무더위를 씻어냈다. 쏟아진 다큐들이 광복 시점 앞뒤 한국 사회의 변화와 분투, 가해자 일본의 논리 등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면, 뉴스 카메라는 분단 극복의 가능성과 희망을 좇아가는 데 주력했다. 다큐와 뉴스의 기막힌 역할 분담이 이뤄졌던 셈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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