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의 품격’ 오오마에
회사에 있을 법도 한 캐릭터
‘직장의 신’ 미스김
사실상 불가능 비현실 캐릭터 오오마에가 자신의 이름을 똑바로 불러주는 이에게만 인사를 건네는 반면, 미스 김(김혜수)은 그냥 ‘미스 김’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길어야 고작 2년 일하게 될 회사에서 구질구질한 친구를 만들까봐서”다. 스스로를 “똥”, “호치키스 심”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미스 김 또한 정규직으로 일하던 은행에서 정리해고된 아픔이 있다. 자격증만 124개. 미스 김도 장규직(오지호)에게 일부러 져주는데 이유는 “피해가 덜 가는 사람이 똥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똑같이 “~합니다만”이라는 말투를 즐겨 쓰는 두 사람 모두 정규직 채용 제안에 “회사에 묶여 있는 노예가 되기 싫다”며 거부한다. “당신은 아무것도 안 하고 누군가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만 숙인다”(오오마에)거나 “퇴근시간 뒤 회사 사람들 얼굴 보는 게 내게는 가장 큰 폭력”(미스 김)이라며 동료에게 싸늘한 말도 던진다. “회사에서 성장하는 것은 (정규직) 사원뿐”, “노력하지 않는 파견은 거기서 끝나는 거다” 등 오오마에의 대사가 좀더 직설적이다. 미스 김은 항공기 정비사 등 별의별 자격증을 다 갖고 있고, 회사 남자 동료를 업고 14층까지 뛰어 올라간다. 그러나 오오마에는 98번의 파견직 생활로 갖게 됐음직한 자격증들을 소유하고 있고, 남자 직원들에게 인기 있는 동료를 질투하는 등 인간적인 면도 자주 드러난다. 오오마에에 비해 미스 김은 거의 ‘신’에 가깝지만, 극 후반으로 갈수록 ‘인간 세계’로 내려온다. ■ 같거나 혹은 다른 에피소드들 똑같이 식품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직장의 신>은 <파견의 품격>과 책상 배치, 인물 배치까지 같다. 이야기 초반 성우가 내레이션을 하는 것이나 사건·사고의 얼개도 얼추 비슷하다. 여주인공과 매번 대립하는 옆 부서 팀장(장규직과 쇼지)이 곱슬머리인 것도, 미스 김의 직속 상사(무정한과 사토나카)가 동료에게 양보만 하는 것도 같다. 은행장 딸 금빛나(전혜빈 역) 같은 캐릭터는 원작에는 극 후반 쇼지 팀장에게 반한 ‘맞선녀’로 잠깐 등장한다. 참치 해체 쇼가 간장게장 쇼로 바뀌는 등 에피소드의 세부적 묘사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직장의 신> 10화에서 다룬 고 부장의 해고 위기는 <파견의 품격>에도 나온 내용이다. 짝퉁 가방 사건, 홈쇼핑 광고 건 등은 원작에 없는 에피소드다. 10부작을 16부작으로 늘리면서 한국적 현실이 더 반영됐다. <직장의 신>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파견의 품격>처럼 평면적으로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편이다. 뭐가 같을까?
정규직·비정규직 모두
회사 권력 앞 ‘희생자’ 묘사
책상배치·성우 내레이션 외
사건·사고 얼개도 거의 비슷 <파견의 품격>이 파견직과 정사원 문제를 더 냉철하게,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측면은 있다. “정사원이 모두 정리해고되면 남는 것은 파견사원뿐일 것이다. 그들은 침략자이고, 동조하면 분명 우리(정사원)는 언젠가 바깥으로 튕겨나갈 것”이라는 쇼지 팀장의 말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 결국 통하는 한-일 노동자의 불안과 설움 <파견의 품격>은 2007년 <니혼티브이> 방영 당시 평균 20.2%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0부 마지막 회는 26%까지 기록했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와 맞물린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정사원과 파견직이 ‘갑’과 ‘을’ 관계에 있어 보이지만, 정작 회사와 권력 앞에서는 모두 ‘을’인 상황을 잘 묘사했다. ‘웃픈’(웃기고 슬픈) 드라마 <직장의 신> 안에는 월급을 받으면 학자금 대출로 빠져나가고, 정규직 전환도 쉽지 않은 ‘88만원 세대’의 비애가 깔려 있다. 정규직의 불안한 심리도 표현했다. 함영훈 프로듀서는 “지난해 여름 <파견의 품격> 리메이크 판권을 산 뒤, 윤난중 작가가 많이 노력했다. 일본 파견 문화와 한국 비정규직 문화가 다른데, 그런 부분을 많이 취재했다. 노동법도 따로 공부하고 인터뷰도 하면서 한국 현실을 반영하려 했다”고 밝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승무원 등 감정노동자 문제나 제과업체 사장의 호텔 지배인 폭행 등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하는 시점에서, <직장의 신>은 한참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부분을 잘 짚어내고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각자의 역할에서 똑같이 희생자가 되는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문제를 비현실적인 캐릭터인 미스 김을 통해 끄집어내는 흥미로운 방식을 썼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이 가려운 데를 긁어줄 줄은 아는데, 긁어주는 것에만 그친다”(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지적도 있지만, “함께 일하는 것”의 본질적 의미를 물은 것만으로도 <직장의 신>은 성공한 리메이크작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한국방송·니혼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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