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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유희열·존박, 진지한 음악적 배경을 가진 뮤지션들이
망가질 때 생기는 순정한 B급 병맛
■ 한겨레21 바로가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겼고, Mnet <방송의 적>은 끝나고 ‘존님’을 남겼다. <슈퍼스타K> 출신의 훈남, 존박에게 이런 천치 같은 매력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샤이니가 <방송의 적>에 나왔을 때, 살아 있는 비주얼로 증명했듯 존박은 샤이니 민호를 닮았다. 다만 이마부터 코까지만 닮았다. 그리고 하관의 반전. 존박이 스스로 “노래 주머니”라고 부르는 길쭉한 턱, 삼각형을 그리며 봉긋 올라간 윗입술은 그의 ‘덜덜이’ 캐릭터를 완성했다. 게다가 <슈퍼스타K> 출신의 동료 김지수가 “죽은 물고기 같다”고 말한 눈은 작심하고 뜨면 한없이 멀뚱멀뚱해 캐릭터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적쇼’는 ‘존박쇼’로
원래 <방송의 적>은 가상의 프로그램 ‘이적쇼’를 찍는 과정을 그린 페이크다큐다. “인정받는 싱어송라이터, 국내 톱3 작사가, 다복한 가정에 스터디셀러 작가, 저작권 부자”라고 스스로 말하는 엄친아 이적의 이면을 풍자하는 프로였다. 여자 밝히는 남자, 허세에 전 예술가 이적을 마치 다큐멘터리 찍듯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었다. 진중권부터 김진표까지, 이적의 지인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적의 제자가 되려는 여성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공유를 닮았다고 주장하는 이적에게 “이런 적 같은!” 하면서 멘트를 날리는 식이다.
“존님은 바보야, 적이 형밖에 모르는 적이 형 바보!” 이적쇼를 찍겠다고 링거를 빼고 병원을 탈출한 존박을 두고 존아카펠라는 안타까워 그렇게 외쳤다. “존님의 도촬은 하루에 두 번까지 허용하는” 존박 팬들로 이뤄진 아카펠라 그룹 존아카펠라, 이들의 탄식처럼 존박의 캐릭터는 원래 그랬다. 이적의 곁에서 이적쇼의 보조 진행자로 쇼의 진실을 폭로하는 캐릭터. 그러니까 박준수 <방송의 적> PD의 표현처럼 “멍청한 캐릭터가 아니라 멍청할 정도로 사실적인 캐릭터”였다(82쪽 상자 기사 참조). 예컨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포장된 이미지로 데뷔하고 20년을 살아가고 있는 이적씨를 보면, 신승훈씨가 생각나네요”라고 독백한다든지, 이적이 “(성)시경이는 훨씬 까칠하고 (유)희열이 형은 변태예요” 하면 옆에서 “형은 둘 다” 하는 식이었다. 때로는 이적의 대변인으로 눈을 부라리며 “하여튼 방송국 놈들!” “엠넷 놈들 보자보자 하니까, 죽일 거다!” 외쳐서 웃음을 주었다.
그런데 갈수록 ‘이적쇼’는 ‘존박쇼’로 바뀌고 있었다. 음악적 영감을 주는 뮤즈로 출연한 개그맨 박지선에게 이적이 뺨을 맞아도 카메라는 이적보다 이적을 멍하게 쳐다보는 존박을 탐했다. 덜덜이 캐릭터를 드러내는 ‘움짤’이 인터넷에 넘쳐나고 마침내 하루도 냉면을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냉면성애자’ 캐릭터가 완성됐다. 냉면을 먹기 전엔 짜증을 한껏 부리다 이적의 냉면까지 한껏 덜어먹은 다음엔 “인터뷰 못했던 거 다 하시죠. 냉면을 잔뜩 먹었더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네요 니냐니뇨~” 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인터넷에 회자됐다. 미국 명문대학 출신 엄친아 존박이 병맛 캐릭터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그에게 스머프 노래 “랄라라랄랄라 씽가랑씽숑”을 가르친 여배우 조여정이 아닌 줄 알면서도 “존박씨 진짜 바보예요?”라고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의 표정은 살아 있었다. 숱한 캐릭터를 보아온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도 “정말 연기를 하는지 실제인지 헛갈릴 정도로 전무후무한 캐릭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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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쇼에는 음악적 영감을 주는 뮤즈와 이적걸스가 등장해 깨알 같은 웃음을 주었다. 이들을 통해 뮤지션 이적의 이면이 드러난다는 것이 <방송의 적>의 설정이었다.
Mne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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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이돌이 나올 때마다 유난히 매서워지는 유희열의 눈은 ‘매의 눈’으로 불린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아이유가 출연해 유희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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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시작된 ‘병맛 개그’와 ‘B급 코드’는 이제 방송으로 진격했고, 다시 인터넷으로 순환한다. 고양시청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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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다큐 개척자 박준수 PD 인터뷰
실제인가, 설정인가 박준수 PD는 <음악의 신> <방송의 적>을 연출했다. 한국 페이크다큐의 개척자, 그렇게 부르면 되겠다. 존박의 ‘덜덜이’ 캐릭터는 실제인가 설정인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메소드 연기’에 대해 말했다.
-덜덜이는 만들어진 캐릭터인가.
=존박씨의 팬들은 이미 그의 표정에서 허당 같은 모습을 보고 있었다. 팬들이 던지고, 작가들이 잡아내고, 존박씨가 연기했다. 예컨대, ‘냉면성애자’도 평소 존박씨가 냉면을 하루 한 번씩 먹을 만큼 좋아해서 나왔다. 식초나 겨자를 치지 않고 먹는 식성도 그렇다. 이렇게 이미 있는 것에서 출발했으니 완전히 가공된 캐릭터는 아니다.
-그래서 더 정말인가 싶은가.
=웃기는 것 같지만, 페이크다큐 형식이 정말 메소드 연기를 요구한다. 몰입하지 않으면 연기가 되지 않는다. 이적씨도, 존박씨도 정말 자신을 놓더라. 아주 연기력이 좋다.
-<방송의 적>은 이전 프로와 설정이 좀 다르다.
=이나 <음악의 신>이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어 보이는 척하는 프로였다면, <방송의 적>의 이적씨는 완전히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출발점은 다르지만 결국 말하려는 것은 비슷했다. 다들 속물적인 구석이 있고 솔직히 드러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세상의 눈치를 보잖나. 그렇게 억압된 우리 안의 욕망을 드러내는 면에서 같았다. 원래 <방송의 적>은 유부남 이적의 비애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엄친아 이적도 여자를 밝히고 그러는.
-그러니까 반전의 매력이 포인트였나.
=사실 존박씨의 덜덜이는 멍청하다기보다는 멍청할 정도로 사실적인 캐릭터다. 눈치 없이 말해서 진실을 전하는 사람 말이다. 가식이 있거나 머리를 굴리면 그렇게 못한다. 그게 바보처럼 보이는데, 실은 시청자를 속 시원하게 대변한다.
-유희열씨를 주인공으로 프로그램 만들 생각은 없나.
=그가 원하지 않을 거다. 원래 알던 사이인데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본인이 연기는 못하겠다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런데 빵 터졌다. 본인은 나중에 대본대로 했다고 말해달라고 하더라. 이적씨는 유희열씨를 두고 ‘입에 뇌가 달렸다’고 하던데. 살리는 것이 상상 이상이었다.
실제인가, 설정인가 박준수 PD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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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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