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7 18:13
수정 : 2005.09.08 14:00
박현정의TV속으로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교육방송이다”라고 말하면 오버일뿐더러 교육방송에도 실례가 되겠지만, 어쨌든 교육방송은 필자에게 많은 것을 준 방송사다. 건강 때문에 집에 주로 있어야 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다 문득, 그때 교육방송이 없었더라면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정말 아찔해진다.
당시는 교육방송이 공사로 출범하면서 ‘평생교육’이란 기치를 내걸고 다양한 일반교양 프로그램을 쏟아내던 시기였다. 그땐 그런 걸 몰랐으니, 교육방송 하면 그저 외국어 공부나 수능특강이 떠올랐고, 곧장 외면하고 싶어지는 일종의 ‘학습용’ 채널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락프로 보면서 낄낄대고 드라마 보면서 우는데도 지쳐가던 즈음, 우연히 교육방송으로 채널을 돌렸던 어느 날 이후, 필자는 저녁마다 교육방송에 채널을 고정하고는 “뭔가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말하는, 한마디로 왕재수, 꼰대, 범생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당시의 교육방송은 이런 놀림을 받아도 상관없을 만큼, 정말 재미있었다.
최재천 교수의 동물의 세계에서 이윤기 선생의 신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던
야 워낙 유명했다. 이후 신설된 김윤아 진행의 <애니토피아>는 당시 대세이던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애니메이션 전문프로였다. 또 <삼색토크 여자>는 사색의 결과로서의 수다는 결코 공허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최고의 프로그램은 <미래토크>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의 정치적 사안이 아닌 미래의 전망을 놓고 의견이 다른 전문가, 학자들을 토론하게 함으로써, 제 이익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이 패널로 나와 애국이라는 허울 아래 가증과 가식을 일삼던 기존 토론프로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진정한 토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르네상스는 다음해 봄, 제작비 문제로 신설 프로들이 줄줄이 폐지되면서 사그라들고 만다.
최근 뉴스를 보니 교육방송이 이번 가을개편을 단행하고 오락성을 강화하여 방송3사에 공세적으로 맞서고 있다고 한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프로를 만든다는 게 교육방송이 내건 방송3사와의 차별화 전략이다. 이홍렬 주철환씨등 진행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몇 년 전까지 불과 몇백만원의 제작비 때문에 불가능했던 교육방송의 자체제작 능력이 강화되었다니 기대가 된다.
앞에서 언급한 교육방송의 르네상스가 1년을 채우지 못했던 것에는, 제작비 문제 이전에 학교교육과 평생교육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교육방송의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모든 교육은 곧 평생교육일 수밖에 없고, 여기에 교육방송의 진정한 몫이 있다. 교육방송이라면 아직도 학과 공부를 떠올리는 시청자들에게 이 점을 알리는 것이 교육방송의 도약을 결정짓는 관건일 것이다. 또한 오락성 강화뿐 아니라 ‘평생교육’이라는 기본에 철저하게 충실하다면 교육방송의 도약은 눈부실 것이다.
박현정/드라마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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