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5.28 19:03 수정 : 2014.05.28 20:52

개그콘서트 ‘깐죽거리 잔혹사’

‘허세 캐릭터’ 인기 비결은?

개콘 ‘깐죽거리 잔혹사’ 조윤호 등
실속없이 큰소리치는 역할 인기 
“자존심 못받치는 현실에 공감
‘영구’ 같은 바보 캐릭터 최신판
스마트폰 허세 놀이 TV에 반영”

“유단자인가?”

개그맨 조윤호가 검은 코트를 벗으며 중저음으로 툭 던지면, 객석은 뒤집어진다. “넌 내 안에 있는 악마를 깨웠어. 천천히 한번 들어와 봐”라며 상대한테 큰소리를 친다. 영화 속 ‘강호의 고수’가 등장하는 장면 같다. 그런데 한 대 맞는다. 맞고서도 “당황하지 않고 고조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울대를 빡! 끝!”이라고 끝까지 허세를 부린다. 싸움을 책으로 배운 ‘깐죽거리 잔혹사’(왼쪽 사진)의 허세 조폭들은 요즘 <개그콘서트>(한국방송2) 인기를 책임진다.

허세. 실속 없이 큰 소리만 치는 허장성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데 최근 방송에선 출연자들이 앞다퉈 허세를 부린다. 따져보면, <개그콘서트> ‘취해서 온 그대’의 리차드 김(김대성)은 돈도 없이 비싼 술집에서 큰 소리를 친다. 사실 ‘찌질한 인생’인데 시청자들은 빵 터진다. 25일 막을 내린 ‘뿜엔터테인먼트’의 김지민도 허세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허세 캐릭터의 인기는 드라마와 라디오로도 이어진다. <티브이엔>의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오른쪽)에서 동남아에서 온 ‘낙원상사’ 직원 스잘은 드라마로 한국 허세를 배웠다. 좋아하던 여자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하늘을 쳐다보는 사진을 찍어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고는 이렇게 쓴다. “널 잊겠다고 다짐한 지 17시간째. 웃고 있어도 가슴 속에선 눈물이.” <문화방송>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은 매일 “허세가 선물하는 인생의 진리”라며 허세 속에서 교훈을 찾는 ‘오늘의 한마디’를 소개한다.

허세는 본래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기세’(표준국어대사전)로 상대편을 비하하는 말이다. 한동안 연예인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감성 충만한 글을 에스엔에스 등에 올리면 ‘허세 작렬’이라는 힐난을 받았다. 그랬던 허세가 요즘엔 호감을 주고 인기를 끈다. 뭐가 바뀐 걸까?

<막돼먹은 영애씨>의 스잘.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진짜 잘난 사람이 잘난 척을 하면 비호감이다. 그런데 개그 속 허세 캐릭터는 뭔가 부족한 사람이고, 이들이 허세로 잘난 척을 하면 찌질함이 더 부각된다. 시청자들은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공감과 호감을 느끼는 것같다”고 했다. 개그맨 김대성도 “누구나 가끔은 좋은 바에 가서 비싼 양주를 시키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존심을 세우면서 최대한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공감과 함께 재미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영구’ 등 바보 캐릭터의 최신판이라는 해석도 내놨다.

개그프로그램은 늘 사회를 반영해왔다. 무너진 교권에 대한 고민이 깊던 2007년에는 학교 소재의 꼭지들이 늘었다. 사회적 소통 부재가 화두였던 2012년께는 어떤 대화를 나눠도 결국 같은 말로 끝나는 ‘멘붕스쿨’의 갸루상(“나는 사람이 아니므니다”) 등이 인기를 얻었다. ‘갑질’에 대한 비난이 커진 최근엔 잘난 척하는 사람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사회를 비튼다. 개그맨 김준현은 “허세 캐릭터는 늘 있어왔는데 최근에는 특히 더 사랑받는 것같다”고 했다.

허세를 부리는 방식도 발전하고 있다. 여전히 싸움꾼 허세가 많지만, 최근에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스잘처럼 자신의 감정을 사진과 글로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게 유행이다. ‘뿜엔터테인먼트’의 김지민도 울다가도 사진을 찍어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연예인들을 풍자했다. 김석현 <코미디 빅리그>(티브이엔) 피디는 “스마트폰 문화에서 허세가 하나의 놀이가 된 걸 개그프로그램이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