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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강원모 인턴기자 1moti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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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특집]
‘커플링’ 하는 손주에게, 너 연애하니? 물으신다면…
본 기사는 2014년 9월 4일에 등록된 기사로 ‘2015년 명량 설날 사용설명서’ 특집으로 재편집하여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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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가요무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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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요즘용어] [일반명사] 1.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 등 특정 하위문화에 마니아 이상으로 심취한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 ‘오타쿠’(おたく)의 한국식 순화어 ‘오덕후’의 줄임말. 무언가를 심히 좋아하는 사람 혹은 그 행위. 2. ‘혹시 우리 아이도?’라 생각하지 마세요. 이미 늦었습니다. 한 가지에 너무 몰두해 보편적인 사고방식에서부터 멀어진 사람을 일컫는 ‘오타쿠’라는 단어는 일본에서도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저 단어에 쉽게 자조적인 동질감을 느꼈다. 이미 오랫동안 ‘빠순이, 빠돌이’로 호명되며 정신 나간 놈 취급 받는데 익숙한데 뭐 어때. ‘입덕’(덕+입문), ‘탈덕’(덕+탈퇴), ‘덕통사고’(덕+교통사고. 무방비상태로 무언가에 매료됨), ‘덕업일체’(덕질하는 분야의 일을 생업으로 삼다) 등의 단어들은 이렇게 파생되었다. 혹시 자녀의 ‘덕질’을 발견해도 나무라지 말자. 우리 모두 뭔가에 미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만큼 삭막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예문: “톰 히들스톤 덕질도 이제 좀 시들해.” “우리 딸 그럼 이제 탈덕하니?”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로 갈아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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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코퍼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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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글 (muggle[영]) [요즘용어] [일반명사] 1. 영국의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 연작에 등장하는 용어. 마법의 존재를 모르는 일반인들을 부르는 마법사들의 용어로, 작중에선 비칭으로 자주 사용된다. 2. 덕질의 즐거움을 모르는 불쌍한 당신. 티브이에서 노래 몇 번 들어보고, 출연하는 프로그램 좀 즐겨봤다고 ‘덕’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스타의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 접속해 새로 업데이트된 소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체크해야 하며, 동료 팬들과 활발한 정보 교류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타의 사진이 인쇄된 상품을 구매하는 건 기본이다.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만 덕질에도 문턱이 있고, 그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은 ‘머글’로 지칭되곤 한다. 요즘 애들 별나다고? 이지연, 강수지 책받침에 돈을 썼던 분들 손? 클리프 리처드 내한공연 때 통곡해보신 분들 손? 그렇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언제나 그랬다. 예문: 못 믿겠지만, 이 아버지도 한 때는 하수빈의 매력을 모르는 머글들을 무시하던 덕이었단다.
명랑운동회 (明朗運動會) [어르신용어] [고유명사] 1. 변웅전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문화방송의 오락프로그램. 유명 연예인들이 철봉에 매달려 풍선 터뜨리기, 떡 빨리 먹고 반환점 돌아오기 등의 다양한 게임을 수행하는 체육 오락프로그램. 2. <아이돌육상선수권대회>의 조상님. 1969년 <유쾌한 청백전>으로 시작했던 프로그램은 1976년 <명랑운동회>로 그 명맥이 이어지며 연예인 운동 버라이어티의 효시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남긴 인상이 어찌나 컸던지, 프로그램이 사라진 1985년 이후에도 종종 명절 때면 비슷한 포맷의 특집 프로그램들이 편성되었다. 지갑으로 키운 내 새끼들이 명절마다 달리기를 하다가 발목 부상을 입고, 뜬금없이 양궁을 하느라 손목 터널 증후군을 앓는 것도 알고 보면 다 방송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잇느라 그런 것이다.
비정상회담 (非頂上會談) [요즘용어] [고유명사] 1. 제이티비시(JTBC)의 예능 프로그램. 세계 각국 출신의 젊은 남성들이 패널로 모여 시사, 문화, 일상 등의 주제를 놓고 각자의 국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의견을 제시하는 토크쇼. 2. <추석특집 외국인노래자랑>류의 확장판. <미녀들의 수다>의 남성판. 명절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나와서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노래도 부르고 송편도 빚는 특집 쇼 프로그램들의 역사는 제법 오래되었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의 매력은 이들이 한국어를 잘하는 걸 신기하게 소비하거나, 이들의 김치 사랑, 불고기 사랑, 비빔밥 사랑을 보는 게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는 나라마다 다른 문화와 가치관이 충돌하는 가운데 다름을 인정하되 접점을 찾아가는 토론이다. 젊은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열광한다는 건 그만큼 그들이 ‘한국 고유의 정서와 가치관’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의미인지 모른다. ※ 어르신들을 위한 팁: 외국인들의 자유분방한 가치관이 내겐 좀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 걱정 마시라. ‘터키 유생’이란 별명을 얻은 보수주의자 에네스 카야가 당신을 기다린다.
손자에게 ‘출발 드림팀’ 있다면
할아버지에겐 ‘명랑운동회’ 있다
손녀에게 ‘엑소’ 있다면
할머니에겐 ‘이상벽’ 있다 올 추석,
공부 잘하니? 취직은 했니?
이런 까칠한 이야기로
내 가족의 ‘일코’를 조장하지 말라
그럴 바에야 연예를 이야기하자
ㄱ부터 ㅎ까지
1970년부터 2014년까지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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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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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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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벽 (李相璧) [어르신용어] [고유명사] 1. 대한민국의 방송인, 연예평론가. 2. 어르신들의 허지웅. ‘어르신들의 허지웅’이라니, ‘<아침마당> 아저씨’ 정도로만 이상벽을 기억하는 젊은 독자들로서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매체 기자, 평론가, 방송인의 순서를 거친 경력이나, 각각 한국방송 <아침마당>과 제이티비시 <마녀사냥>에서 매력적인 입담으로 여성 시청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어르신들 사이에서의 이상벽의 입지가 상상이 갈 것이다. 그래도 허지웅만큼의 환호를 받진 않지 않았냐고? 방송인 김제동은 자신의 공연에서 “우리 어머니는 이상벽 선생님이 없으면 아침이 안 오는 줄 안다”며 모친의 이상벽 애호를 고백한 바 있다. ※ 유의어: 어르신들의 전현무 허참.
일코 (一+co) [요즘용어] [복합명사] 1. 일반인과 코스튬 플레이의 합성어. 특정연예인이나 예술 장르, 작품의 팬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껄끄럽고 민망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모르는 척 일반인 흉내를 내는 행위. 2. 지금 여러분의 자녀, 조카, 손주들이 하고 있는 일. 공부 잘하냐, 취업 준비 잘되어가냐, 결혼 언제 할 거냐 등, 어르신들의 난처한 질문은 젊은이들의 명절기피증을 유발하는 일등 요소다. 안 그래도 이런데 덕질을 들켜 ‘네가 지금 이런 거에 정신 팔려 있을 나이냐’는 소리까지 듣는다고 상상해보자. 고향에 오고 싶겠나. 이런 탓에 명절은 ‘일코’가 연중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다. 여러분의 자녀라고 예외는 아니다. 취향이니 뭐든 존중해줄 자신이 없다면, 평화로운 명절을 위해 내 가족의 일코를 모른 척해주자. ※ 예문: 명절마다 일코 하느라 고생이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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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행진 방송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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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장사씨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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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링 (coupling) [요즘용어] [일반명사] 1. 연결, 결합, 교접, 교미 등을 뜻하는 영단어. 2. 내가 보고 싶은 커플은 내가 직접 고른다. 자신이 ‘덕질’ 하는 작품을 즐기고 또 즐겨 더 즐길 거리가 남지 않은 이들은, 작중 등장인물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소설이나 만화 등의 2차 창작에 나선다. 커플링은 작품이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커플이 아닌 다른 등장인물들 간의 우정이나 로맨스를 상상해 구현하는 행위로, 적극적인 자세로 대중문화를 즐기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다. 뭐 그런 거에 시간을 허비하느냐고? 나관중이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삼국지연의>를 쓴 것도 2차 창작이고, 원작에 없는 가공인물 초선을 집어넣어 여포와 동탁을 연적으로 만든 것도 커플링의 일종이다. 천년이 넘는 취미활동인 셈이다. ※ 유의어: 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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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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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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