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의TV속으로
추석 특집 <2005 삼순이 선발대회>가 삼순이 캐릭터를 희화화하고 왜곡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가 삼순이를 사랑한 것은 그가 당당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인간이어서지 단순히 뚱뚱하고 욕을 잘해서는 아니었습니다”라는 한 누리꾼의 글이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이건 짚어볼 문제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민족 최대 명절에 선발대회를 개최할 만큼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드라마였기에 텍스트 비평 하나 나오지 않았고, 드라마를 제작한 방송사조차 성공요인을 제대로 몰라 삼순이 후보들은 방귀를 뀌고 욕을 해야 했다. 최근의 드라마 속 포스트 삼순이들은 험한 입과 생활력과 엽기성을 자랑한다. 늦었지만, 이쯤에서라도 우리는 도대체 왜 김삼순이어야 했는지, 좀 더 정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 캐릭터라서? 그렇지도 않다. 미남사장 삼식이까지 갈 필요도 없이, 삼순이만 해도 그 정도 재능에 말빨에 외모까지 그쯤 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렇다면 항상 당당해서? 그게 늘 플러스도 아니다. 남자 뺏기고 앓아누운 연적의 집에 가서 죽먹어라 들이대는 부분이, 꼭 보기 좋지만도 않았다. 마냥 당당하게 들이대는 거, 월권이고 민폐일 때도 많다. 현실성도, 당당함도, 솔직함도, 삼순이의 의의를 딱 설명해내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과연 삼순이가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삼순이는 한국 드라마(특히 트렌디 장르) 최초로, 소통 능력이 있는 여자 캐릭터였다. 그것은 기존 캐릭터들처럼 소통을 포기했던 희진(정려원)과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삼순이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은 삼식이가 삼순이에게 못생겨서 이상형이 아니라며, “이게 손이야 족발이야” 따위 대사를 할 때다. 울거나 따귀를 칠, 이미 소통이 파탄난 상황에서도 삼순이는 “너도 내 이상형 아니야. 왜, 너는 솔직하지 못하니까”라며 맘 없으면 흘리고 다니지 말라고 통쾌한 언어적 싸대기를 날린다. 내 남자 내놓으라는 연적에게 삼순이는 “무슨 물건도 아니고, 스스로 결정하게 두자고요 네?”라면서 조목조목 반박한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멀리멀리 떠나는 게 아니라. 삼순이는 그만큼 합리적 언어를 사용하는 캐릭터였다. 삼순이의 욕설은 오히려, 그녀의 합리성을 방증하는 도구다. 삼순이가 쌍욕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상대가 합리적 대화를 거부하거나 배려가 없거나 협상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때였다. 그런 욕 나오게 만드는 세상, 욕 나오게 만드는 인간들에게는, 참는 대신 시원하게 쌍욕을 먹였다. ‘그래서’ 우리는 삼순씨를 좋아했다.삼순이라는 캐릭터에서 ‘욕’이 부각되는 것은 맞지 않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성공은, 욕을 하는 여자 캐릭터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욕을 하게 만드는 상황의 설득력에 방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욕설들에 정당성이 부여되기 위해 전제되는 소통에 대한 진지함이 삼순이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브라운관 속 포스트 삼순이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현정/미디어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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