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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주 작가의 속물 사회 3부작 중 ‘풍문으로 들었소’는 가장 어린 여성이 주인공이다. 서봄(고아성·맨 오른쪽)이 공부에 재능을 보여서 세습사회의 근간을 흔들며 사건은 벌어진다.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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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정성주 작가의 속물사회 3부작 <풍문으로 들었소>…
감옥 같은 응접실 풍경이 전면화된 홈드라마, 서봄의 선택은
박경수 작가의 <펀치>가 끝나자 그 후속작으로 정성주 작가의 <풍문으로 들었소>가 도착했다. 드라마계에서 대한민국 특권층의 속성을 가장 잘 해부하는 두 작가가 이번엔 공통적으로 법조계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으로 연이어 안방극장을 찾은 것이다. 먼저 박경수 작가는 부패한 검찰 수뇌부를 조명했던 <펀치>를 끝마치면서 한 정치인의 패륜적 횡포를 다뤘던 <추적자>, 자본의 무한 탐욕을 그렸던 <황금의 제국>과 더불어 대한민국 지배권력의 삼각구도를 탐구한 ‘권력 3부작’을 마무리지었다. 그렇다면 정성주 작가의 <풍문으로 들었소>는 <아내의 자격>과 <밀회>에 이어 계급사회의 허위의식을 꿰뚫어보는 ‘속물사회 3부작’이라 부를 만하다.
박경수의 집무실, 정성주의 응접실
정성주 작가의 2012년 작 <아내의 자격>은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대치동으로 이주한 주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강남 중·상류층의 신분 상승 욕망과 허위의식을 꼬집었고, 2014년 작 <밀회>는 클래식 음악을 이미지메이킹과 돈세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상류층의 위선과 부도덕을 비판했다. 현재 방영 중인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는 대한민국 상위 1%에 해당하는 초일류 상류층의 가식과 속물의식이 풍자 대상이다. 물론 이 일관된 작품세계의 근원을 찾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식계급의 속물근성을 날카롭게 풍자함으로써 작가 정성주, 연출 안판석 콤비 신화의 기초를 마련했던 2000년 드라마 <아줌마>도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2010년대 <아내의 자격>부터를 속물사회 3부작으로 묶는 이유는 이 작품들이 더욱 심화된 계급 양극화의 현실을 폐쇄적인 밀실 이미지라는 유사한 스타일로 그려내고 있어서다. 밀실은 박경수의 권력 3부작에서도 핵심 이미지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권계급의 폐쇄성을 비판하는 두 작가의 공통된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박경수 작가의 밀실이 남성 위주의 공적 집무실로 표현되며 굳건한 제국의 성격을 지니는 것과 달리, 정성주 작가의 밀실은 주로 여성들을 제한된 조건 속에 가두는 사적 응접실의 풍경으로 나타나면서 감옥의 느낌에 더 가까워진다. 이를 통해 속물사회 3부작은 공고한 양극화 사회와 함께 ‘젠더’라는 또 하나의 계급체제를 동시에 비판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아내의 자격>에서 학벌계급사회라는 부조리한 풍경은 ‘대치동 엄마’라는 사적 응접실의 세계에 압축돼 있다. 이 세계는 국제중학교와 미국 상위 10개 보딩스쿨을 거쳐 아이비리그로 연결되는 초특급 엘리트 코스의 치열한 경쟁체제에서 자식들을 생존시키기 위해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철저한 폐쇄사회다. 동시에 ‘대치동 엄마’들은 그 목표를 위해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의 삶’에도 갇혀 살아야 한다. “경쟁 대신 존중이 넘치는 세상”을 꿈꾸던 윤서래(김희애)는 이 극단적 속물사회로 이주하고부터 ‘아내의 자격’만을 강요받으면서 이중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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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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