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05 19:00
수정 : 2005.10.06 14:23
박현정의TV속으로
스토리와 세트에도 그리고 촬영이나 연기에도 심지어 간접광고 수법에조차도 단 하나의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논란만 무성했던 한 드라마가 끝났다. ‘진심’없는 연기를 하게 만든 작가 두 사람과, ‘착한’ 감독님과 스텝들,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도 연기력도 ‘진심’이면 통한다고 믿었던 순수한 한 배우를 뒤로 한 채. 이제 그와는 정반대의 드라마가 왔다. 명성있는 작가와, 위압적인 궁궐의 부감 샷을 식은 죽 먹듯 찍어내리는 세트와 미술, 동굴 속 부처상과 승려 둘의 등진 구도만으로 심리를 표현해내는 감각적인 연출과 촬영, 게다가 표정만으로 압도해버리는 오현경 같은 ‘위대한’ 조연들이 짱짱하게 버티고 있다. 또 기존 사극연기의 고정된 틀을 깨고 얼핏 보면 만화주인공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능글능글한 전래동화 캐릭터 같기도 한, 완전히 새로운 타입을 창조해내는 손창민 같은 주연이 돋보인다. <신돈>은 정말, 스타배우만 빼고 모든 게 있다. 그런데 시청률이 나쁘다. 이래서야, 우리가 <루루공주>를 통해 얻은 최소한의 교훈조차 ‘그것 봐라 역시 스타파워라니까’ 라는 업계 패러다임 아래로 고스란히 넘어가게 생겼다.
물론, 재미없는 드라마를 “한국문화산업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서, 혹은 “한류광풍이 열풍에서 미풍으로 잦아들다 마침내 역풍으로까지 번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의무감으로 보자는 말은 아니다. 아마도 <신돈>하면 딱 떠오를, 정치성, 역사성, 관념성 다시 말해 ‘꼰대성’이라는 부분에 손사래를 치는데 일단 걷어볼 일이다. 순전히 ‘오락성’의 측면만으로도 충분히 들여다 볼 만하다. 장담하건대 <신돈>은 결코 ‘꼰대스럽지’ 않은, 매우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사실 좋은 드라마란 게 재밌어서 보다보면 감동도 얻고 교훈도 얻는 거지, 교훈을 주려고 일장연설을 하거나 터무니없이 폼만 잡고 그러진 않잖은가. <서울의 달>이 재미가 없었나, <모래시계>가 재미가 없었나. 물론 <신돈>은 아직 초반부고 <서울의 달>이나 <모래시계>만큼 완성도 있는 드라마가 될지야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오로지 스타 꽁무니만 쫓으며 본분은 싸그리 망각하는 졸속제작 드라마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 새로운 걸 해보려고 나선 드라마의 시청률이 10% 안팎인 건 너무하다. 원래부터 트렌디 취향인 시청자들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사극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눈길을 안 주는건, 새로운 시도에 너무 박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손창민 연기에 혹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에 낯선 것일 뿐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장희빈이고 태조고 난정이고 궁예고, 사극 인물들이 사생결단식 카리스마로 승부하는 데는 변화가 필요하다. 손창민은 새로운 길을 가보려 하는 것이다. 뭐, 이쯤 되면 <신돈> 제작팀에 뭐 받아먹은 거 있냐고 묻는 분들도 있겠다. 쥐뿔도 없다. 다만 “스타 없으면 뭘해봤자 망해요”란 업계 논리가 정말 뒤집어지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다.
박현정/드라마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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