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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6 18:24 수정 : 2005.10.27 15:46

이야기TV

서민의 치열한 일상 좇는 ‘하루’

지난 23일 일요일 밤 11시께, 문화방송의 에이치디(HD) 뮤직 다큐멘터리 <하루>(연출 이우호)가 텔레비전 앞으로 내 눈과 귀를 끌어당겼다. 이 다큐는 0시부터 다음 0시까지 전국 곳곳에서 일하는 보통사람들의 다양한 일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촘촘하고 유기적인 영상기록으로 엮어 보여주었다.

모두들 잠든 밤 0시,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봉제공장과 동대문시장에서 밤샘 일을 하는 사람들, 심야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레일러 기사와 신문배달 아주머니, 우시장 할아버지 등 새벽을 여는 사람들 그리고 쉴 새 없이 질주하는 퀵서비스 청년과 하루 종일 서서 숫자와 씨름하는 할인점 계산원 아주머니 등의 땀흘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에이치디 고화질 영상과 이에 조화를 이루는 테마 뮤직에 담았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와 갈수록 심하게 벌어지는 빈부 격차, 허탈과 절망이 점차 커져만 가게 하는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하루하루를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은 보석처럼 눈부셨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은 한 주부는 지방에서 동대문시장에 물건을 사러온 상인들의 짐을 지켜주는 일을 새벽에 하고 낮에는 전단지 돌리는 일과 부품조립 부업을 하며 힘겹게 하루 5만원 벌이를 해나가면서도 아름다운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이 다큐를 본 시청자들은 대부분 큰 감동을 받은 듯했다.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은 “내용과 음악, 영상이 모두 감동적이었다”거나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희망을 가졌다”며 하나같이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식당 일이 끝나면 노래방 카운터를 보는데 가끔 옆에 와서 노래부르고 기분 맞춰달란 손님 때문에 힘들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성은 “다큐 속의 인물들이 너무 나와 비슷해 눈물이 났다”며, “이렇게 열심히 사는 우리들을 높은 사람들이 과연 알까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다큐에 나온 과일 노점 할머니는 그날 1만2천원어치를, 잡화 노점 할아버지는 채 2만원이 안되는 금액을, 모자 노점 아주머니는 3만5천원어치를 각각 팔았다. 여기서 물건값 등 비용을 빼고 얼마가 남았을까? 겨우 자신의 점심 한끼값이나 나왔을까? 서울의 어느 68평형 아파트는 지난 1년 사이 6억원이 올라 하루 164만여원씩 번 셈이라는 내레이션이 나올 때는, 시름에 잠긴 이 노점상들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이들뿐 아니라 길거리에 나가면 얼마나 많은 노점상과 일용직 노동자와 신용불량자들이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나?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생각했다. 돈을 잘 벌고 재산이 많은 이들이 최소한의 생계비도 못버는 이들을 위해 번 만큼, 가진 만큼 세금도 많이 내고 기부·헌납도 기꺼이 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번 만큼, 가진 만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다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삶이 얼마나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지 실천해보길 기대하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윤영미 기자 young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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