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7.16 10:05 수정 : 2016.07.16 10:10

이재익의 인디밴드 열전

사진 최삼 페이스북 갈무리
프로그램도 흥망성쇠의 과정을 겪는다. 간혹 10년 넘게 장수하는 프로그램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몇 년이면 생명을 다하고 개편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런데 가끔은 존재의 당위성을 갖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프로그램 자체만이 아니라 방송 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그렇다.

올해로 5년차인 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엠넷)는 대중문화에서 힙합의 지분을 넓힌 일등 공신이다. 꼭 이 프로그램이 처음 선을 보인 몇 년 동안 가요계에서 힙합의 지분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몇 년 사이 오랜 기간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던 래퍼들은 이제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 등장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고, 넘치는 돈 자랑을 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게다가 여자 래퍼들만 출연하는 <언프리티 랩스타>(엠넷)라는 독특한 스핀오프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대중이 존재조차 모르던 여성 래퍼들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좋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자리를 잡았다는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쇼 미 더 머니>의 공이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진 지금 이 프로그램의 방향성은 꽤나 우려된다.

요즘 <쇼 미 더 머니> 참가자들의 관심사는 오직 두 가지로 보인다. ‘스웩’(swag)과 ‘디스’(dis). 힙합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스웩이란 힙합 뮤지션 특유의 자부심과 스타일을 뜻하는 말이고, 디스는 특정 상대를 랩으로 비판하고 공격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다 보니 깊이 없이 겉멋 들린 가사가 난무하고 약자를 비웃고 깔아뭉개는 가사도 박수를 받는다.

물론 스웩과 디스는 힙합의 일부다. 그런 노래들도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철학적인 랩보다는 파티와 클럽의 흥을 돋우는 힙합을 더 좋아하고, 래퍼들끼리의 날 선 디스전도 무척 재미있다. 그러나 스웩과 디스는 절대로 힙합의 본질은 아니다. 그런 것들도 있어야 하지만 그런 것들만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변명이 가능했다. 일단 힙합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고 관심을 끄는 구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는 무척이나 설득력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런 시기는 지났다. 지금 <쇼 미 더 머니>가 할 일은 스스로 왜곡한 힙합 신의 균형을 고민하는 일이다. 이러다간 대중이 힙합을 지겨워할 테고 그러면 다 망한다.

이쯤에서 최삼이라는 래퍼를 소개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꾸준히 활동하다가 2014년 디지털 싱글 음반 <답>으로 데뷔했다.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외모에서 알 수 있듯 분명히 여성 래퍼인데, 미리 성별을 얘기해주지 않으면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목소리가 중성적이고 서늘하다. 물론 그의 무대에서도 어느 정도의 스웩과 디스를 볼 수 있지만 그는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자기 안의 균열과 자기 밖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녹여낸다. 이제 막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만큼, 좀 더 자극적인 랩이나 마케팅에도 욕심이 날 법한데 그는 정도를 걷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최삼을 오늘 소개하는 이유도 <쇼 미 더 머니> 프로그램과 관계가 있다. 그는 작년에 다른 래퍼 한 명(MC 메타)과 <쇼 미 더 머니>를 디스하는 노래를 발표했다. 이런 식의 디스라면 대환영이다. 나보다 약한 자의 약점이 아닌, 강자의 횡포를 꼬집는 디스, 어쩌면 그것이 힙합의 본령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런 의식 있는 랩을 하는 래퍼들은 또 재미가 없다며, 스웩이 없다며 디스를 당한다. 게다가 올해 방송되고 있는 <쇼 미 더 머니> 시즌 5도 예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최삼의 디스가 약했던 것일까?

아이돌 일색의 가요계에 힙합이 필요한 것처럼, 스웩과 디스만 난무하는 힙합 신에도 다양한 색깔이 필요하다. 특히 힙합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와 강자에 대한 저항은 반드시 필요하다. 영혼이 없는 껍데기 문화가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우리는 충분히 많이 봐오지 않았나.

래퍼 최삼의 곡 중 하나를 추천하자면, ‘답’이다. 가사 일부로 글을 맺는다.

“넌 가만히 있어. 잠이나 자. 좋은 꿈이나 꿔. 난 잠을 안 자. 똑바로 앉아 내 꿈을 이뤄.”

글 <에스비에스> 피디, 사진 최삼 페이스북 갈무리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