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이켄ㆍ나카시마 미카 등 리메이크에 편중
"왜 요즘 국내 가수들은 몇몇 일본 가수들의 곡만 리메이크 하는 거죠. 한 가수가 어떤 일본 가수 노래를 리메이크해 반응이 좋으면 우르르 몰리는 경향이 있어요." 일본어 번역업에 종사하는 32살 J-POP 마니아 정승원 씨의 말이다. J-POP은 작년 1월 일본 문화 전면 개방 전까지만 해도 X-JAPAN, 튜브, 안전지대, 서던 올스타즈 등의 가수들이 일부 마니아한테서 음지에서 사랑받았다. 그러나 최근 테이, 이수영, 정재욱, 린 등 국내 가수들이 현재 일본 오리콘차트 상위에 랭크되는 가수의 곡을 앞다퉈 리메이크 중이다. 이중 눈에 띄는 일본 가수들은 다마키 고지, 히라이켄, 나카시마 미카로 몇 손가락에 꼽힌다. 나카시마 미카처럼 이 루트를 통해 국내에서 유명해져 원곡이 담긴 음반과 모바일ㆍ인터넷에서 공급한 음원이 더블 히트한 사례도 있다. ◇다마키 고지ㆍ히라이켄ㆍ나카시마 미카가 단골 테이는 이달 발표할 3집에 그룹 안전지대 출신의 보컬 다마키 고지의 히트곡 '콜'을 리메이크한 '사랑에 미치다…'를 싣는다. 이수영도 그의 '레드 와인의 마음'을 번안해 7집에 수록한다며 10월 콘서트에서 첫 공개했다.정재욱은 일본 발라드계를 휩쓸고 있는 히라이켄의 히트곡 '히토미오 도지테'(눈을 감고)를 리메이크해 이달 중 디지털 싱글로 발표한 후 내년 1월 4집에도 수록할 계획이다. 서영은의 5집 후속곡 '너만을 위한 노래'도 히라이켄의 히트곡 '오모이가 가사나루 소노 마에니(생각이 겹치기 전에)'를 리메이크했다. 이미 국내 신인가수 심플리 선데이가 미국 민요를 리메이크한 히라이켄의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를 또다시 리메이크해 발표한 바 있다. 나카시마 미카는 박효신 덕택에 국내 팬층이 두터워진 케이스. 나카시마 미카의 '유키노 하나'(눈의 꽃)는 박효신이 리메이크해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주제가로 삽입,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에 나카시마 미카 음반은 올해 봄 해외 음반 차트 상위권을 지켰고 모바일 및 온라인 수익도 짭짤했다. 린의 3집 수록곡 '물망초' 역시 나카시마 미카의 'Will'을 개사했고, 엄정화도 새 음반에 '사쿠라이로 마우코로'(벚꽃이 흩날릴 때)라는 곡을 리메이크해 수록한다. ◇우리 정서에 맞는 멜로디 공통분모 사실 일본곡 리메이크가 새로운 트렌드는 아니다. 포지션의 '아이 러브 유'는 유카타 오자키의 'I Love You', 드라마 '피아노' 삽입곡으로 쓰인 캔의 '내 생에 봄날은'은 튜브의 '가라스노 메모리즈'(유리의 기억들), 역시 캔 5집 타이틀곡 'My Way'도 튜브의 '기토 도코가데'(반드시 어디선가)를 리메이크했다. 이밖에도 엠씨더맥스의 '잠시만 안녕'은 X-JAPAN의 'Tears', 조장혁의 'Love Song'은 차게 앤 아스카의 'Love Song', 이수영의 '굿바이'도 자드의 'good day' 멜로디에 가사를 새로 실었다. 그러나 지금 다마키 고지, 히라이켄, 나카시마 미카 등 몇몇 가수에만 국내 인기 가수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나카시마 미카, 히라이켄의 음반을 유통하는 직배사 소니BMG의 J-POP 담당 신성희 차장은 "이들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하려는 음반기획사의 문의가 늘었다"며 "이미 일본에서 히트해 검증됐다는 점, 한국적인 정서에 맞는 탄탄한 멜로디를 갖췄다는 점 때문에 리메이크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음악전문채널 뮤직온 TV의 서영민 PD도 "거론된 가수들은 서정적인 발라드를 부르는 부드러운 음색의 가수들"이라며 "이들 노래는 한국 가수가 불렀을 때 대중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멜로디를 갖췄다"고 분석했다. 이어 "일본 음악 시장과의 교류에 물꼬를 튼 한국 음반제작자들이 현지 히트곡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어 한국 시장 트렌드에 맞는 일본곡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이들의 노래는 SG워너비, 버즈 등 발라드가 강세인 한국 음악시장 경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덧붙였다. ◇불황 여파로 제작비 절감에 보탬 일본 곡 리메이크 배경에는 국내 음악 시장의 불황 여파도 있다. 신성희 차장은 "음반제작자들이 여러 유명 작곡가에게 곡 의뢰를 하다가 '이거다' 하는 노래가 없으면 가장 손쉽게 찾는 것이 일본곡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음반제작자는 "요즘 히트 작곡가의 곡을 받으려면 1천만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곡은 검증된 좋은 노래를 싼 값에 쓸 수 있다. 리메이크 자체가 가요 시장에서 환영받진 못하지만 제작비 절감이 필요한 현실이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또 "한때 팝을 리메이크하는 열풍이 일었다. 팝은 음반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었지만 우리 정서와 맞지 않아 음반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특히 팝은 편곡 제한이 많지만 일본 곡은 편곡에 융통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수들이 J-POP을 리메이크하면 비난 여론을 받을까 대중의 눈치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과의 정치ㆍ경제적인 상황이 악화될 때마다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국내 가수의 일본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지금, 일본 노래가 국내 가수에 의해 소개되는 것은 음악적인 교류가 쌍방향이라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 (서울=연합뉴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