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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웃음과 눈물 가득한 편지를 소개해 인기를 끌고 있는 문화방송 표준FM의 <여성시대>가 방송 30돌을 맞았다. 사진 위부터 지금 이 프로 진행자인 양희은 송승환, 그동안 진행을 맡아온 손숙 김승현, 손숙 정한용, 봉두완 이효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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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300만통 서툰 글 생생 사연 울고 웃어 자살하려던 부녀 제보 방송 현지 주민들 몰려가기도
안타까운 사연, 푸근하고 따뜻한 마음,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와 에피소드를 매일같이 전하며 전국의 주부들을 라디오 앞으로 끌어모아 온 <여성시대>. 문화방송 표준FM(95.9㎒)의 <여성시대>(오전 9시10분~11시)가 방송 30돌을 맞았다.1975년 4월 임국희가 진행을 맡은 <11시의 희망음악>으로 시작해 이종환, 봉두완, 이효춘, 정한용, 손숙, 김승현, 전유성 등 수많은 진행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현재 진행자는 양희은과 송승환. 양희은은 1999년부터 진행을 맡아 왔으며, 송승환은 지난해 3월부터 양희은과 호흡을 맞췄다.
인기의 비결은?=<여성시대>는 ‘희망음악’ 시절부터 지금까지 모든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틀어 줄곧 청취율 1~3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30년 동안 장수한 프로그램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청취자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기도 쉽진 않다. 과연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김현수 피디는 “이 프로그램의 원동력은 역시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 가득한 사연”이라고 풀이했다. <여성시대>에는 하루 평균 250여 통의 편지가 오고, 이 가운데 8편이 소개된다. 세련된 ‘미문’은 아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얘기들이기에 청취자들은 소개되는 사연에 함께 웃고 눈물짓는다.
김 피디는 “75년부터 지금까지 3백여만 통의 편지가 온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며, “한 통의 사연이 편지지 4장(1m)쯤 되니 그 길이를 계산하면 무려 3천㎞로, 서울과 부산을 3.5회 왕복하고 에베레스트(8,848m)를 339번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시대 ‘가족’의 힘=이 프로의 애청자들은 스스로를 ‘여성시대 가족’이라 부른다. 이런저런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될 때면 청취자들은 어김없이 ‘내 일’처럼 여기며 저마다 도움의 손길과 격려를 보낸다. 정찬형 문화방송 라디오본부장은 “뉴미디어 시대에 라디오는 한물간 매체라고들 하지만 실시간 ‘양방향’의 소통이 가능한 것이 라디오”라며, “<여성시대>는 이런 장점으로 서민들의 생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0월 말엔 남편이 4.5t 화물차로 건설자재 운반 일을 하는 주부가 화물차 도둑맞은 사연을 올리자, 한 청취자가 그 화물차를 발견했다는 제보를 해와 되찾은 일화도 있었다.
서민들의 삶이 유난히 고단했던 외환위기 때인 98년 3월에는 아기와 동반 자살을 결심한 젊은 남성을 청취자들의 온정으로 구해내기도 했다. “거제도 방파제 앞에 며칠째 서 있는 프라이드에서 아기 젖병도 보이고 젊은 남자가 왔다 갔다 했는데 오늘은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청취자 전화 제보가 소개되자, 근처의 청취자들과 경찰, 소방대원들이 따뜻한 물과 분유, 이불을 들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간 것. 사업체가 부도나고 아내도 떠나자 갓 돌이 지난 아기와 생을 마감하려고 바닷가를 찾은 이 남성에게 거제도 주민들은 방과 식사를 제공했고, 전국에서는 일자리를 알려주겠다, 아기를 돌봐주겠다, 성금을 보내겠다는 온정이 쏟아졌다. 생판 모르는 이웃의 정성에 젊은 아빠는 다시 한번 일어나 아기를 위해 열심히 살겠다는 소식을 제작진에 전해왔다고 한다.
방송 30돌 기념 이벤트=요즘 <여성시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30년 동안 이 프로그램과 동고동락한 애청자들의 30돌 축하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난지도 쓰레기장에서 고철을 주워팔며 틈틈이 사연을 보내 받은 각종 상품들이 생계에 큰 도움이 됐다는 주부, 장애를 지닌 자녀 때문에 결혼생활 13년 동안 시장 한번 마음놓고 가보지 못하다가 <여성시대>가 개최한 1박2일간의 ‘주부 나들이’ 행사 덕분에 13년 만에 첫 외출을 했다는 주부, 방송된 사연을 녹음한 테이프를 가보로 간직했으나 화재로 불타고 말았다는 주부 등 사연도 다채롭다.
<여성시대>는 30돌을 기념해 12월14~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특집 행사 ‘서른살의 여성시대’를 연다. 매일 현장의 오픈스튜디오에서 생방송이 진행되며, 방송 뒤 프로그램 제작진과 청취자들의 만남의 시간도 마련된다. 점심시간을 활용한 포크가수들의 라이브 콘서트와, 별도의 디제이 박스에서 전문 디제이가 진행하는 옛 음악다방 형태의 ‘추억의 음악다방’도 준비된다. 행사 마지막날에는 대규모 공연도 기획되고 있다.
<여성시대> 30년의 역사를 정리한 ‘추억의 전시회’를 비롯해 여성과 함께 한 시대의 문화 및 역사를 전시한 ‘타임터널’, 여성과 관련한 사진전 및 여성박물관 초대 전시 등 추억을 되살리는 볼거리도 풍성하다.
이밖에 유명인사와 스타, <여성시대> 청취자들의 기증품을 받아 아름다운 가게와 함께 판매하는 결식어린이 돕기 행사도 연다.
윤영미 기자 young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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