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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2 08:13 수정 : 2005.11.12 08:13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 분장실.

한국바둑리그의 인터넷 생중계 마이크를 잡고 있던 김성룡 9단이 외친다.

"드디어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옥언니' 등장입니다"

일순 온라인 대국실의 채팅창이 격랑 속의 돛배처럼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을 외쳐대는 붉은 악마들처럼, 네티즌들은 일제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다. `이쁘시네요'부터 시작된 찬사는 어느덧 `바둑계의 전지현'이라는 찬사까지 이르고 만다.

바둑계 `김구라' 김성룡의 재치만점 해설도, 스튜디오 안에서 벌어지는 반상의 혈투극도 뒷전이다.

임종옥(24.고려대 국문4). 그의 신분은 바둑TV의 리포터다. 아니 본업은 아직 학생이다. 지난 5월부터 국내 최대 규모 기전인 농협2005 한국바둑리그 리포터로 일한다.

그러고 보면 바둑계 '짬밥'이라고 해봐야 불과 6개월. 보수의 대명사와 같은 바둑동네에서 이처럼 단기간에, 그것도 프로기사가 아닌 `민간인'이 뜬 사례는 근 10년 내 다섯 손가락이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경력 6개월이란 이력서에 그녀가 제동을 걸었다.

이미 지난해부터 자신은 바둑밥을 먹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2004 한국바둑리그에서 대국 계시를 맡았다고 한다.

계시란 대국자가 대국을 하는 동안 옆에 앉아 대신 초시계를 눌러 주는 작업이다. 물론 초읽기도 부른다. `하나 … 두울 … 세엣 …'. 대국자들에겐 저승사자의 동반 요청과도 같은 바로 그 카운트다운.

그러다가 올 5월 2005 한국리그가 시작되면서 리포터로 승격(?)됐다.

`대국 때 계시하는 아가씨가 예쁘다' `계시만 하기에 아깝다' `화면에 클로즈 업 좀 자주 해 달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제작진에게 즐거운 압력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팬들은 매주 적어도 세 번 정도는 한국바둑리그가 끝나고 승자와 함께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첫 데뷔. 생방송이라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마이크를 들고 덜덜 떨었다. 대국 직후 초주검이 된 기사들을 세워 놓고 인터뷰를 하고 있자면 종종 마음이 아파온다고 한다.

그녀가 꼽는 최고의 인터뷰 상대자는? 금메달은 김성룡, 그리고 조훈현, 박정상, 이희성 등이 그 뒤를 잇는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박영훈은 마이크만 들이대면 슬슬 도망가 한 번은 옷자락을 붙들다시피 하고 인터뷰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상대는 이세돌 9단이었습니다. 너무 짤막짤막 답변을 해 굉장히 당황했었어요. 첫 질문은 그러려니 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에도 모두 마찬가지 반응이었으니 …"

이 인터뷰는 방영 후 `이 9단의 개성이다, 무성의했다'로 갈려 팬들 사이에서도 꽤 논란이 있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다. 모든 것이 재미있단다. 그러고 보니 어려서도 그랬다. "아빠는 군인 출신 공무원이시고 엄마는 선생님이세요. 집안이 무척 보수적이었죠. 의대생인 오빠도 아주 모범생이었고. 그런데 전 어려서부터 고집이 무척 셌대요.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해야 했죠. 마음대로 안 되면 3시간이고 4시간이고 울었다고 해요. 지금도 엄마는 `넌 어려서 너무 울어서 못 생겨졌다'고 놀리세요"

욕심 많은 그녀는 취향도 다양하다. 유화에 심취해 있고 대학 관현악단에서는 플루트를 연주한다.

어려서부터 해 온 한국무용에도 꽤 조예가 있다. 한때는 연예인이 되어 보겠느냐는 섭외도 받았다. 친구를 보면 사람을 안다 했다. 그녀의 인간관계 면면을 보면 가히 사회학적 직업 분포도를 보는 것만 같다.

바둑의 `바'자도 모르던 그녀가 바둑일을 하게 된 것도 바둑TV에서 PD로 있던 대학 선배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여자 아마강자 이승현과는 고교 동창의 절친한 친구. 아마추어 고단자들의 모임인 청아모 회원들과도 가깝다. 현재 그녀의 꿈은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 KBS 방송 아카데미 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봄온 아나운서 아카데미 심화반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 중이다.

"원래는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공도 국문학을 택했죠. 그런데 1년쯤 다니고 나니 불가능해 보이더라구요. 게다가 대학생이 되고 보니 세상에는 문학 말고도 해 보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아나운서를 꿈꾸는 그녀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작은 목소리. 듣기에 편하다는 장점과 맞물린 단점이다.

그래서 요즘 성악가 등을 찾아다니며 목소리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운전 중 신호에 걸릴 때면 뉴스 원고를 펼쳐들고 빨리 읽기를 한다. 그녀의 이상형은 KBS 9시 뉴스 앵커인 정세진 아나운서다.

뉴스도 뉴스지만 야밤에 그녀가 진행하는 클래식 오디세이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단다.

성격을 묻자 `전형적인 O형'이란다. 처음에는 어려워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금방 친해진다는 그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져 보았다.

`바둑계의 전지현'이라...본인 생각은 어떨까?

"친구들이 그래요. 너는 눈, 코, 입 하나도 안 이쁜데 제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라고"

자랑인가, 교만인가. 그녀를 알기 위해선, 아무래도 조금 더 친해져봐야 할 것 같다.

양형모 객원 기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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